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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May 19. 2020

언제나 무심한 내가 시간의 겹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PIKNIC <명상 Mindfulness> 전시 후기

(2020.04.25 방문)

* 후기에 전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크닉의 명상 전. 감각/경험주의자에게 찰떡인 전시였다. 올해 얼마나 많은 전시를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20년 연말정산에서 '올해의 전시'로 꼽을 만하다. 좋았던 것에 비해 글이 너무 늦어져 민망하고 아쉽다. 그래도 여러 번 가고 싶은 전시여서 다음에 후기를 한 번 더 쓸지도 모른다. 이번 주에 다시 다녀와야겠다.



피크닉의 공간에서는 특히 옥상의 구조 때문에 공간의 가변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 전시였던 '류이치 사카모토 전'을 보고 올라갔을 때와는 달리 앉을 수 있는 마루가 생기고, 바닥 재료도 다르고, 동선도 바뀌었더라.

전시의 성격과 주제에 어울리는 구조로 변형하고, 계속 다른 콘텐츠로 채워가는 것. 전시를 더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고, 잠시라도 차분함을 담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정된 형태, 그러니까 어떤 한계 안에서 작업하는 것보다 변화를 만들며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더 좋을지 궁금했다.

가변적인 공간은 공간 자체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백지'로 여긴다는 것일 텐데, 콘텐츠를 더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지만 잘못 변형했을 때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예상보다 클지도 모른다.

조금만 고민해봐도, 구조 변경과 철거에 따른 비용은 물론, 언제나 돌발상황이 생기는 공사 현장, 기획자의 의도와 시공자의 작업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 완성도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몹시 많다.


물론 돈이 많으면 (여기에 시간까지 많으면 금상첨화다)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나도 이 전시를 위해 투입된 자본이 몹시 부러웠다. 나는 일터에서 공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방법만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조적으로 변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정인지 알기 때문에 대단하고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아래 전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총 7개의 세션으로 '마음챙김'을 경험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챙김과 명상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작가의 경험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작업이 대부분이었지만, 전시 뒷부분으로 갈수록 관객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모든 전시가 그렇듯 모든 세션이 다 인상 깊지는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명상의 감각을 공유하고, 짧고 강렬하게 명상을 경험할 수 있었던 세션 3개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오마 스페이스

여러 세션을 지나 이 방의 커튼을 걷던 순간이 아직도 또렷하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림자가 공간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고, 빛과 음악이 모두 은은한 공간이었다.


이 세션에서는 보고, 걷고, 들으며 감각하는 마음챙김을 경험했다. 헤드폰을 쓰고, 시간 차를 두고 한 사람씩 차례로 미지의 구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 신비로웠다. 대기할 때에는 대화를 자제하고 고요한 상태에 머무르라는 가이드가 있었고, (심지어) 양말까지 모두 벗고 걷는다고 했다. 갑자기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마음챙김이 일상의 습관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주의라, 명상 또는 마음챙김이 늘 신비로운 무언가로 포장되는 것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세팅 - 완전히 다른 세계로의 진입 - 덕분에 몸의 감각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었다. 외부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단절된 구조물 안을 천천히 걸었다. 바닥의 질감과 재료가, 나를 둘러싼 빛이, 음악이 계속 바뀌었다.


첫 발걸음부터 '발의 감각에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걸어본 게 언제더라' 싶었다. 바닥 재료에 따라 걸음의 소리가 달라지면 헤드폰 음악에 새로운 효과음이 더해졌다. 빛이 깜빡이거나 잠시 흐려질 때 걷는 속도를 조절해보기도 했다. 재미도 있었고 무언가 충족되는 느낌이었다.


발 자체를 감각하는 것은 무척 생소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내가 평소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아름다운 것들, 몸으로 진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데, 언제나 무심한 내가 지나쳐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만족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반투명 천이 벽을 대신한 부분도 섬세한 기획이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언뜻 보였고,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혼자 걷지만, 완전히 혼자는 아닌, 뭔가 연결된 느낌이 있었다. 이 날은 사람들이 내 곁을 지나쳐가는 게 위안이 되었다. 자갈 밟는 소리, 앞서 출발한 사람의 실루엣에 안도하며 걸었다.


데이비드 린치

짧은 영상 작업물.

지금은 영상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명상을 해서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내용보다는 보는 것 자체가 명상이었다. 그냥 이 순간의 몰입감이 떠오른다.


패브리커

세 개의 '어니언'과 다른 작업들 때문에 기대했던 세션이었다. 그런데 제임스 터렐 오마주인 건지, 뮤지엄 산에서 본 작업과 너무 비슷해서 조금 실망했다.


이 공간 역시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아마 완전히 의도했을 것 같다. 그야말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곳으로 계단을 오르며 바로 몇 초 전의 순간과 더 빠르고 확실하게 단절되었다. 이곳에서는 2분 동안 짧게 명상하는데, 마지막 세션이라 더 차분하게 마음 정리를 하고 떠날 수 있었다.


다만 공간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2분을 경험하지는 못해 아쉬웠다. 예를 들어 10명이 한 번에 들어가 동시에 2분을 경험하는 방식이었다면 모두가 균일한 경험치를 가져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시차를 두고 입장하며 개별적으로 단절과 진입의 감각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공간에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1분도 채 경험하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다소 짧게 머무른 것 같아 아쉬웠다.


루프탑

공식적인 전시 세션을 모두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면 마음챙김과 일상을 연결할 수 있다. 일종의 랜딩 포인트라고 여겨졌다. 같이 갔던 분은 이 전시 중에서 제일 좋았다고 했다.


외부의 자극 - 물, 바람, 햇빛, 음악, 소음, ...-과 감각을 극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옥상 한편에 마련되어 있다. 원하는 만큼 머무르며 충분히 영감과 감상과 감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정말 가만히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 점심을 먹지 않고 가서 오래 앉아있지 못했던 게 아쉽다 (배가 고파서... 흑흑...).


옆으로 돌아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본인의 상황과 감정에 맞는 차 한 잔을 받아 쉴 수 있다. 전시가 끝나자마자 막바로 전시장을 떠나지 않고, 한번 더 차분한 상태에서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시간 위에 시간 위에 다시 시간이

오래된 건물에 전혀 다른 무드의, 혹은 전혀 다른 시대적 콘텐츠를 채우는 곳에 가면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구식 건물)를 다시 시간으로 채우는데(최신의 무언가), 그게 완전히 다른 성격의 시간이 되는 것이라는(현재), 그런 상상이다.


우리는 계속 한 가지 시간을, 다시 말하면 일직선으로 생긴 단 한 개의 시간 안에서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시간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지는,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포개어지는 바로 그 순간도 어쨌든 살고 있는 거니까, 결국은 '현재'라고 부르는 연속된 시간 속에만 사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 현재에 정말로 '제대로' '잘' 머무를 수 있다면 겹겹이 쌓이는 시간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시간의 겹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그러므로 더욱더 '지금, 여기'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우연을 뚫고 함께 하는 것인지도 새삼스럽게 가늠해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같은 면에 포개어진 소중한 존재들.


감각하고 경험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회를 날렸던 것일까. 전시를 보는 동안 내 마음은 항상 지나간 시간이나 앞으로 올 시간에 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감각 알아차리기만 잘해도 하루가 조금 더 평안하고 덜 괴로울 텐데 말이지.


오늘 밤에는 내가 평안하기를, 당신이 안전하기를, 우리가 사랑하기를 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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