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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oozoo Jun 15. 2020

흥 내려온다, 이날치 내려온다

2020 러시아워 콘서트 3 - 이날치 <수궁가> 후기

(2020.06.11 관람)


파랑새극장에 어울릴 감각적인 아티스트를 찾아 헤매던 때, 조이가 '이날치'라는 밴드를 아냐고 물었다. 국악 하는 사람들인데 아주 힙하다고, 온스테이지 영상도 올라왔다고 일러줬다. 별생각 없이 누른 링크에서 흥이 터져 나왔다. 당시에 6월 발매된다는 <수궁가> 앨범 소식에 공연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LG아트센터에서 발 빠르게 공연을 마련했다.

코로나 시대의 공연이라 취소될까 봐 걱정했는데 공연 취소 없이 회차만 조정되었다. 취소하고 다시 예매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일에는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했다.


공연 당일 아침, 미리 전자 문진표를 작성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링크에 접속해보니 개인정보와 문진표를 간편하게 작성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고, 공연장에서 "PASS"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더라. (링크 하나로 갈음할 수 있는 간편함, 그리고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대기업의 시스템은 볼 때마다 조금 부럽다.)

공연장 홀에는 종이 문진표와 QR코드가 함께 비치되어 있었고, 입장할 때는 하우스 어텐던트가 네 명이나 달라붙어 확인에 확인을 거듭했다. 사람이 안 와도 걱정, 많이 와도 걱정인 백 오피스의 마음이 스쳤다.

예매할 때부터 확인했던 '거리두기 좌석'은 눈으로 보니 더 안심되었다. 다른 사람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거리두기 좌석'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으니 한번 더 확인해주는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걸러내려고 하는데 확진자가 나오면 그건 진짜 바이러스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튼콜 '범 내려온다' ⓒ 우주 OOZOO


공연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아니, 생각과 다른 음악이었는데도 너무 신이 났다. 곡을 다 알고 가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처음 봤던 영상 외에는 일부러 아무것도 듣지 않고 갔는데, 그래서 계속 다음 곡이 기대되었다.

내가 듣기에는 잠비나이 혹은 씽씽보다도 쉽고 가벼웠다. 길게 말할 것 없이 그냥 좋았다. 흥이 저절로 났다. 앉아서 듣고만 있으려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엄청난 춤을 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스탠딩이었다면 다들 더 재밌게 놀 수 있었을 텐데. 몹시 몹시 아쉬웠다.

무대는 아주 단출했다. 드럼과 북, 베이스, 스피커가 서있는 풍경. 그리고 무대 양 옆의 작은 스크린을 통해 곡 제목이 표시되었다. 처음에는 악기와 소리꾼만 공연하다가, 중간부터는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함께 무대를 채웠다. 웃기고 멋진 춤이 박자에 딱 맞게 떨어질 때 쾌감이 있었다.


아니리보다는 창이 더 많은 공연이었다. 창에는 수궁가 가사를 그대로 갖다 쓴 부분이 꽤 있어서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원체 어려운 한자 말로 이루어진 부분도 많았고, 소리하는 사람들 특유의 발음이 섞여 있어 단어가 들리다가 안 들리다가 했다. 육성이 아니라 마이크+스피커 조합으로 전달되어서 더 알아듣기 어려웠던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는 가사를 몰라 조금 짜증이 났다. 수궁가야 다 아는 내용이기는 해도, 뭘 알아 들어야 지금은 어떤 대목이겠거니 짐작할 텐데 그게 어려웠다. 스크린의 곡 제목도 금방 사라졌고, 제목만 봐서는 뭔지 잘 모르니까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 더 듣다 보니 비트가 좋아서, 멜로디가 좋아서, 혹은 후렴구가 좋아서 음악 자체를 즐기게 됐다. 외국 노래도 뜻을 다 알아들어서 좋은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어서 좋은 거니까 이 음악도 그냥 이렇게 들으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리꾼들이 소리에 소리를 얹을 때에 특히 재밌었다. '차르르' 같은 의성어를 반복적으로, 서로 돌아가며 리드미컬하게 뱉을 때에는 '우리말이 이렇게 재밌고 귀엽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연 안내 브로셔도 없었고, 가사를 알 길도 없었으니 가사집 정도의 브로셔는 무척 도움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밴드 공연일 때는 굳이 브로셔를 만들지 않고, 필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커튼콜 '범 내려온다' ⓒ 우주 OOZOO


또 좋았던 부분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춤사위. 어찌나 잘 맞아떨어지던지! 이 콜라보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비트가 쪼개질 때마다 스텝도 쪼개지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쿵-짝-쿵-짝의 몸짓은 놀랍기까지 했다. 동작이 연결되기보다는 박자에 맞춰 탁! 탁! 떨어지는 느낌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몸을 순간적으로 잠그는 것 같은 몸짓이 너무 신기해 배워보고 싶었다.

마지막 세 곡을 남겨두고 밴드와 댄스팀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를 이끄는 김보람 안무가의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수염이 없으면 안무를 못 짠다'는, 배운 사람의 유머. (나중에 찾아보니 국립현대무용단 온라인 상영회로 봤던 분이더라. 이렇게 반가울 수가!)


의상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소리꾼들의 의상도 홍대나 한남동에서 만날 것 같은, 몹시 '힙스터'스러웠다. 주변에서 볼 수 있을만한 '옷 잘 입는 사람'이 구성진 창을 내보였을 때의 생경함이 신선했다. 댄스 팀 역시 첫 등장 때는 까만 정장에 검정 고무신 같은 의상이었다가, 나중에는 각종 전통 모자를 쓰고 알록달록한 의상으로 진화했다. 한복 같기도, 현대 복식 같기도 했다. 정말 다 잘한다 잘해.



이날치의 온스테이지 영상은 6/14 오후 11시 기준으로 조회수 158만 회를 기록했다. 이토록 주목받은 이유는 일단 음악이 좋아서일 것 같다. 그리고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기막힌 조합이라서. 그리고 국악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느낌이라서.

이날치의 인터뷰에서도 국악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밴드라고 설명하듯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소리꾼과는 달라 새로운 존재로 느껴지는 것 같다. 원래 소리꾼은 가수이면서 배우이고 춤도 추는 1인 창작자니까,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이 무대가 가장 현대적인 소리꾼의 모습일 것이다.


잠시나마 가야금 전공생이었던 시절을 지났기 때문에 국악이라는 장르에 늘 애정과 안타까움 비슷한 감정이 있다. 이 장르가 더 잘 되려면 국악을 거의 듣지 않고 자란 사람들에게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주 안 들어봐서 어렵고 어색한 거지, 막상 들으면 예상보다 좋다고 느껴질 거란 생각도 있고.


사람들이 국악에 더 쉽게, 더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변했으면 좋겠다. '퓨전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국악이라는 바탕 위에서 변하려는 시도는 많았으니, 이제는 이날치의 방법처럼 현재/현대의 무언가가 바탕이 되고, 그 위에 국악을 살포시 얹는 방식으로 시도해봐도 좋을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듣는 사람들도 국악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클래식이나 오페라가 듣기 쉬워서 즐기는 것이 아니듯이, 국악 역시 좀 더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얼마 전 BTS 슈가의 '대취타'가 공개된 이후로 다들 '대취타가 도대체 뭔데?'라며 국립국악원 채널로 달려갔던 것처럼.


젊은 국악인들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국악의 흥과 매력과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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