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파랗다, 봄 하늘이. 참 노랗다, 산수유 꽃이. 봄이 왔으니, 일하러 가야지. 감은 눈으로 바라본 태양은 하얗게 눈부시다. 감자를 심을 밭에 비닐을 씌웠다. 바람이 불어 잠시 쉬는데, 어머니가 말했다. “여기 파 좀 봐. 비닐하우스에 있는 걸 옮겨 심었더니, 몸살을 앓고 있네. 옆에 있는, 원래 있던 파는 새파랗잖아.” 과연 그렇다. 생생한 것 옆에 있으니, 참 불쌍해 보인다.
황금색 햇살을 맞으며 걷다가 문득, 잔뜩 시든 파가 나 같다. 지금껏 살던 방식과 다르게 살겠다고 마음먹은 내가 곧 저렇게 될 거 같다. 그동안 수많은 ‘가르침’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인 삶이 나쁘지 않았다. 친절한 이웃, 교회 봉사자로 칭찬을 받았지만, 그곳엔 내가 없었다. 이제는 그렇게 안 살련다. 어머니의 손에 뽑힌 파처럼, 뿌리째 뽑혀서 전혀 다른 삶을 꿈꾸련다.
먼저 결별할 것은, 하나님 핑계로 편 가르는 교회 관습. 진리와 거짓,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자를 말하며, 세상을 제멋대로 둘로 가른다. 사랑을 해야지 왜 판단을 하나! ‘나’는 ‘너’보다 진실하니, 닥치고 자신을 따르라? 그건 신만이 할 수 있지, 같은 사람끼리 말할 수 없다. 천국을 말하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지독한 아이러니. 사람, 상식과 상관없이하나님 앞에서 당당하다고? 에라이!
다음은 ‘대가리 중심적 사고’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려서 철학 공부를 하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삶을 깊이 바라본다 착각했다. 결과는 내 ‘몸’이 바라는 것에 대한 외면과 내 ‘생각’에 대한 우월감. 일련의 사건을 겪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며, ‘몸과 생각이 하나’란 걸 알았다. 앞으로 내 인생에 ‘진지충’, ‘착한 사람’은 없다. 몸(마음)이 가는 대로, 봄 나비처럼 훨훨!
어떤 신앙인은 나의 믿음을 잘못된 것이라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동안 지인들은 내 기대 밖 행동에 등을 돌릴지 모른다. 두렵다.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은, 내 남은 인생을 허비하는 것. 열심히 묻고 일하며, 신이 오직 나만을 위해 예비한 삶을 살아야지. 미지근했던 20대보다 훨씬 뜨거운 40대를 살겠다. 늦은 사춘기가 당황스럽지만, 심장이 뛴다. 파야, 고맙다. 같이 몸살을 앓자꾸나!
하우스 안의 파는 옮겨 심지 않으면 못자리 때 뽑혀 사라질 운명이었다. 전혀 새로운 곳으로 옮겨져 몸살을 앓지만 더 생생히 자랄 것이다. 나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