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가 외출하고 들어올 때 하는 말이다. ‘아빠, 저 다녀왔어요.’란 공손한 말은 상상에서나 가능하다. 현실은 “돼지, 또 누워서 책 보고 있었어?”이다. 아, 언제였던가. 아이의 입에서 ‘아빠’란 말이 사라진 게…. 아마도 2년 전, <신비아파트>에 나오는 ‘금돼지’란 캐릭터를 알고 난 후. 평소 나와도 편하게 지내는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 J가 나를 보고 “금돼지다!”라고 외쳤다.
그 후, 나는 금돼지, 시간이 흐르면서 그냥 돼지가 되었다. 뭐, 불만은 없다. 운영위원장으로서 어린이집에 방문할 때 아이들은 “돼지다!”하면서 한바탕 웃음 소란을 벌인다. 아이들을 웃길 수만 있다면, 그깟 별명쯤이야. 무엇보다, 나의 몸매가 별명에 가까워지고 있어, 부인할 수 없었다. 처음 밝히는 건데, 지난겨울이 지나며 태어나 처음으로 몸무게 앞자리가 8을 넘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1호는 어디 가나 나를 돼지라고 불렀다. 아이의 자연스러운 호명에 나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당황했다. “아빠한테 돼지라니.”, “그렇게 돼지는 아닌데?” 등 책망과 위로 중간의 말을 우리에게 건넸다. 또 어떤 이들은 아이에게 ‘버릇이 없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말 길게 하고 싶지 않아 말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버릇이 없는 게 아니오!”
난 우리 1호가 버릇이 없다고 1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나를 제외하고, 세상 누구에게도 돼지란 말을 쓰지 않는다. 또 영리한 탓에 어디 가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아이에게 무척 편하단 뜻이고, 우리가 서로 그만큼 가깝단 의미이다. 사랑해서 하는 말이지, 버릇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돼지 딸’이라고 놀리는 게 아주 꿀맛이다.
농번기가 시작되고, 소극적 다이어트(야식 줄임)를 하면서 앞자리가 내려갔다. 그러자 1호가 말했다. “돼지야, 살 빼지 마. 내가 돼지라고 못하잖아.” 아, 고민이다. 외모를 챙길 것인가, 아이와의 특별한 관계를 지킬 것인가. 나는 아이들과 이토록 편한 관계를 평생 지속하고 싶다. 힘들 때 언제든지 찾아와 안길 수 있는…. 지난밤, 냉동실에 쟁여놓았던 닭강정을 꺼냈다.
금돼지는 사람이 굶어 죽어 된 귀신이다. 구하리는 그의 사연을 듣고, 영혼을 위로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