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내주자

2020 반딧불이 불꽃놀이

by 안효원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분주한 저녁이다. 긴 장마에 땅이 마르지 않아, 밭을 만들 수 없었다. 지금 밭을 만들지 못하면, 주말에 배추를 심을 수 없다. 인생은 타이밍인 것처럼, 농사도 타이밍, 이라며 아버지는 서두른다. 비닐을 씌울 때는, 이미 해는 서산 뒤로 사라졌다. 오늘 삽질이 유독 힘들다. 밭이 아직 물기가 있고, 오전에 논에서 물 댄다고 한바탕 씨름을 한 탓이다.


시커먼 비닐이 멀리 가로등에 비쳐 땅보다 밝은 색이 됐을 때 일이 끝났다. 아이고야, 긴 하루구나, 하고 돌아오는데, 집 뒤 산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반딧불이다! 연애 초기 애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든다. 행여나 멀어질까, 발소리를 낮추고 다가가, 한참을 바라본다, 말을 건다. 오래 기다렸어,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안 올 줄 알았잖아. 반딧불이는 빙글.


1호는 책을 보고, 2호는 씻고 있다. 아이들 데리고 반딧불이 만날 생각에 설렌다. 2호 옷을 입히고, 아이들 손을 잡고 나간다. 칠흑 같은 어둠, 개똥을 피해 산 가까이 가는데, 빛이 보이지 않는다. 반짝, “아빠, 나 봤어!”(1호) “난 못 봤는데.”(2호) 1호의 목소리는 커지고, 2호의 것에는 초조함이 느껴진다. “조금만 기다려. 올 거야.” 반짝, “봤어!” 2호는 환호성을 지른다.


반짝반짝 점으로 나타나던 것이 빙글빙글 돌며 원을 만든다. 2020년 자연이 선물한 우리의 소박한, 행복한 불꽃놀이. 자, 이제 들어갈까? 아쉬운 마음에, 개똥 피할 생각도 않고, 뒷걸음질 친다. 그때, 반딧불이 두 마리가 집으로 날아온다. 이건 무슨 아름다운 무대 매너인가. 어어! 한 마리가 정확히 나를 향해 다가온다. 잡을까? 손을 벌렸더니, 손바닥에 살포시 착지한다.


“엄마도 보여주자!” 두 손을 모으고, 집으로 달려간다. 작은 방에 들어가 불 끄고, 엄마를 부른다. 반딧불이는 영롱한 빛을 내며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일상의 공간이 특별한 곳으로 변한다. 헤어지기 싫은 연인처럼 좀 오래 보려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1호가 말한다. “아빠, 이제 보내주자.” 반짝, 욕심부리지 않는 아이의 마음이 빛난다. 창문 밖으로 날리며 인사한다. 잘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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