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줘
[깜언 베트남 13]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오늘은 네가 버디 해라!”
호이아나 CC에 도착할 무렵, 마치 내게 그런 권한이 있는 것처럼, 김사장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오늘은 네가 이겨라!” 이렇게 안기자와 김사장은, 어제와 반대로, 승리와 버디를 나눠 갖기로 약속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김차장은 말없이 웃었다. 아마도 ‘잘들 논다!’의 느낌인데, 나이 마흔 중반에 이렇게 순수(혹은 유치)하게 놀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가!
다시 찾은 호이아나는 여전히 멋지고,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100개를 깨겠다고 덤벼들었다가, 멘털이 깨진 게 벌써 1년. 오늘은 100개는 바라지도 않고 필드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내 정신의 조각들을 잘 주워 와야지. 그러려면 일단 잘 먹어야 해. 라면에 맥주를 맛있게 먹고 드라이빙 레인지로 향했다. 몸에 기분 좋은 설렘이 가득 찰 무렵 든 생각. ‘진짜, 덥다!’
9월 다낭 라운드를 위해 체력 훈련을 안 한 게 아니다. 봄 내내 하루 14시간 이상씩 일했고, 여름 땡볕도 쌩얼로 맞았으며, 얼마 전에는 40도가 넘는 비닐하우스에 고추를 따기도 했다. 모두 다 고된 일이지만, 내일을 위한 ‘혹서기 훈련’이라고 받아들이며, 기쁜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한국의 여름과 베트남의 여름은 달랐다. 클럽을 들고 걷기만 해도 가슴에 땀이 찼다.
김사장이 준비한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연습을 시작했다. 슈웅, 탁! 나쁘지 않다. 어제 라구나 랑코 마지막의 좋은 기운이 이어지는 듯하다. 드라이버는 제법 멀리 나갔고, 아이언은 똑바로 나갔으며, 웨지는 거의 ICBM급으로 수직 상승했다. 작년에 바로 이 레인지에서,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마음의 균열이 시작됐는데, 1년의 시간이 나를 조금 낫게 만들었다.
나는 슬쩍 J 형님을 봤다. 열심히 스윙을 하느라 주변을 쳐다보지 않았다. 내심 나를 봐주길 바랐는데…. 내가 그렇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최악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형님에게는 조금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본격적인 라운드가 시작되면 보여줄 수도 있으나, 그때 지금처럼 칠 거라는 보장이 있나. 그러길 간절히 바랄 뿐이지….
30분 몸을 풀었을 때, 아니 몸이 땡볕에 다 풀렸을 때, 우리는 그늘에 앉아 잠시 쉬었다. “형님 혹시 저 치는 거 보셨어요? 많이 좋아졌죠?” “네, 좋은데요!” 그때 출발 신호가 와서 자리를 떠야 했다. ‘이따가는 망칠지도 모르니까, 지금 모습을 기억해 달라고요.’라는 말을 못 했는데, 허세만 는 사람이 되었다. 별 수 없지, 실전에서 보여줄 수밖에. 골프공은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