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효원 Dec 14. 2023

잘 못 한다

[깜언 베트남 24(에필로그)]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시즌 3)

남자 셋의 세 번의 라운드. 안기자의 평균 스코어는 120타. 매일 조금씩 숫자를 줄였지만, 극적인 드라마는 없었다. 각종 골프 예능을 보면 일행에게 (비)웃음과 동정을 사는,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주는, 그 흔한 ‘백돌이’란 이름을 달고 싶어도 도저히 끼워줄 수 없어 입구컷 당하는 그런 스코어를 기록했다. 출국 전 가슴 부풀게 만든 희망은 하늘 어딘가에 흘렸다.


‘120’이란 숫자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담겼기 때문이다. 안기자는 이날을 생각하며 봄의 수고와 여름의 무더위를 견뎠다. 넓은 그린에 있는 작은 홀컵처럼, 김사장과 김차장은 바쁜 일 와중에도 3일을 온전히 비웠다. 망샷이 나오면 묵묵히 서로를 응원했고, 굿샷이 나오면 자신이 친 것보다 더 크게 “나이스샷”을 외쳤다.


다낭 전지훈련을 마치고, 나는 ‘잘 못 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못 하는데, 결심할 것까지 무어냐?’ 싶겠지만, 골프를 잘 못 하는 이 시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이다. 3년 전 처음 클럽을 잡을 때 금방 백 개를 깨고, 김차장을 만나 ‘아슬아슬하게 줘져야지.’ 생각했다. 어려서 들판에서 노는 게 일이라서, 웬만한 운동은 못하는 게 없어 생긴 자신감이다.


골프는 다른 운동처럼 쉽게 늘지 않았다. 독학을 선택했지만, 처음 2년은 ‘홀로’라는 말이 무색하게, 온갖 레슨 동영상을 보며 길을 잃었다. 작년에 다낭에서 첫 라운드를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혼돈 상태를) 경험하고 돌아와, 모든 영상을 끊고 온전히 내 몸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엔, 남 보기와 달리, 난 나아진 걸 느꼈다.


나의 골프 인생을 파 5 롱 홀에 비유하자면, 그린까지 쉽게 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드라이버를 잡고 티 박스에 서 있다. 좋은 일행과 함께해 OB를 내고 또 내도, 사랑의 멀리건을 받아 계속 칠 용기를 얻었고, 치면 칠수록 공의 방향이 가운데로 수렴되고 있다. 이제 앞서가는 사람들 부러워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오직 내 공만 봐야지. 누구의 길도 아닌 안기자의 길.


골프를 하면서 ‘못 한다’의 반대말이 ‘잘한다’가 아니라, ‘안 한다’라는 걸 깨달았다. 인생에서 뭔가를 새로 시작할 때, 못 하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 ‘못’이 심장에 박힌 것처럼 아프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안 하면 영영 못 하지. ‘못 하는 나를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 칠순에 70개를 치겠다는 세 남자의 약속을 지켜, ‘잘 못 하는’ 지금 이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 테다!


주섬주섬, 다시 희망을, 주워 담는다.


- 끝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