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계단 셀프 감금 사건

[깜언 베트남 9] 나이 마흔, 남자 셋, 여행

by 안효원

대(大) 자로 뻗은 우리와 달리, 김차장은 옷을 갈아입었다. 음력을 쓰는 베트남 사람들은 1월에 송년 파티를 크게 하는데, 가봐야 한단다. 지난 새벽, 여직원이 많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온다는 얘기에 우리는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안 필요해? 김사장이 짱인데! 다 뒤집어 놓을 수 있어. 난 짱 박혀서 숨만 쉴게”라고 했는데, 지금은 방에서 숨만 쉬고 싶다.


얼마 후, 김차장에게서 카톡이 왔다. ‘여행사 부스에 가서 내일 하롱베이 배 타는 거 결재 좀 해줘. 여권 가져가고.’ 훗, 이 정도야. 1인당 85달러, 총 255달러를 가지고 미션 장소로 향했다. ‘이게 티켓인가요? 어디서 출발하는 거지요?’ 문법 파괴 영어로 임무를 완수하고 김사장에게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훗, 이 정도 실력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 자신감이 충만했다.


여행사는 38층, 방은 39층. “김사장, 한 층이니까 그냥 걸어가자. 베트남 전기 좀 아껴주자고.” 김사장이 동의하기도 전에 계단 문을 열어 성큼성큼 올라갔다. 39층 손잡이를 힘차게 돌리는데, 이게 웬걸, 문이 열리지 않았다. 38층으로 부리나케 뛰어가 열었지만, 이곳도 흑흑. 인터폰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다. 비상 스위치만 있는데, 그걸 어떻게 깨냐고. “김사장, 미안.”


한창 파티를 즐길 김차장한테 연락해 흥을 깰 수 없다. 방금 들른 여행사에 전화를 하려는데, 국제전화를 어떻게 하는지 해봤어야 알지. 여러 번 시도했는데, 자꾸 없는 번호라 그러고, 센서등이라 자꾸 꺼져 깜깜해지고, 김사장은 불 나오게 한다고 옆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고. 방금 전 뿜뿜하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젠장, 이 상황에도 배는 고프다고 난리다.


나에 대한 기대를 상실한 김사장은 문을 격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헬로, 헬프 미, 거기 누구 없어요?” 세상에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김사장이 절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빼꼼 열리더니, 눈부신 빛이 들어왔다. 할렐루야! 베트남 할머니의 미소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손녀는 당황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서프라이즈!”


20200110_211402.jpg 안에서 열리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계단 문에 떡하니 붙어있었지만, 자신감 뿜뿜의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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