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차장과 안기자의 하노이 최후의 만찬. 무려 티본스테이크를 쏜단다. 제대로 뽑아먹기 위해 온 건 맞지만, 뼈까지 뽑아 선뜻 내놓을 줄이야. “먼 길 가는데 많이 먹어라”라며, 닭고기, 돼지고기에 맥주도 시켰다. 음, 이놈은 분명 나를 무척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이놈이 무척 좋은 놈이던지, 이도 저도 아니면, 그냥 바보. 나도 망설이다, 이때 아니면 못하겠다 싶어 말했다.
“Lㅓ를 좋아하기로 했어.” 정말 어렵게 마음을 고백했다. L사는 김차장이 다니는 대기업. “흐흐흐. 그럴 필요 없어. 안 좋아해도 돼.” 한참 고민하다 겨우 꺼낸 말인데, 반응이 왜 이래? 좋다, 마음을 한 번에 받아주지 않으니, 구질구질 다 설명해주마. “네가 다니는 회사잖아. 그럼 나한텐 좋아할 이유가 충분한 거지. 나 L이 다니는 H자동차 차 안 사서 미안해 죽겠다. 썅.”
나이가 들면서,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필요한 건, 단 한 가지라는 것을. 하나에 딱 꽂혀서 좋아하면, 나머지도 다 좋아 보이는 거지 뭐. 다 따져보고 좋아하는 건가. 다 따지면? 감당할 사람은 있고? 세상 그 어떤 사람이, 하나부터 열까지 좋아할 이유를 가질까. 기껏 옷으로 나온 배 감췄는데, 기어이 벗겨서 돼지라 욕해야 속이 시원하냐?!
‘가혹하다.’ 최근 벌어지는 만인의 만인에 투쟁을 보고 든 생각이다. 사람인데, 단 한 시간 뒤의 일도 모르는, 부족한 존재일 뿐인데, ‘너 잘못한 거 없어?’라고 쑤셔대면, 누가 발 뻗고 잘까. 일단 자진신고. 나 많이 못나고, 그동안 잘못한 게 많다. 그래서 나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타인에 대한 가혹한 시선을 거둔다. 한 가지 이유만 있어도 좋아하고, 최소한 미워하지 않겠다.
공항행 택시를 타기 전, “한번 안아 보자.” 내가 팔을 벌리자, 그는 환한 얼굴로, 몸을 숙여 나를 안았다. 밝은 표정과 따뜻한 몸짓이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는 함께 박찬호 경기를 보고, 스타 크래프트를 했다. 엉덩이가 크다고 난 ‘엉뚱이’, 얼굴이 크다고 김차장은 ‘얼큰이’ 유치한 별명을 부르며 좋아했던 우리. 여행의 끝에서 엉뚱이와 얼큰이가 다시 만났다.
김차장의 대접을 받으며, 내 자격이 아닌 그의 품격이 만든 자리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도 마찬가지. 욕을 많이 하는 이는, 정의로운 척 해도, 그냥 욕하기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