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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음 Mieum Jan 25. 2022

06. 여자들은 왜 이렇게 꾸미는 데 관심이 많아요?

여자들은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지



 일상에서 매우 쉽게 접할 수 있는 짧은 대화들이 있다. 어쩌면 당신의 대사였을지도 모르고, 바로 조금 전 들었을 대사일지도 모를 정도로 일상적인 대화들.



<상황 1>

A : 이런 네일아트 같은 것은 얼마 정도 해요?

B : 천차만별이긴 한데, 만원대에서부터 몇십만원대까지 다양해요.

A : 아니 너무 비싸네… 여자들은 도대체 왜 이런 걸 하는 걸 좋아하는 거에요?


<상황 2>

C : 그거 알아요? 국내 성형, 다이어트 시장이 점점 더 커져서 이제 연간 몇 조원이래요.

D : 헉, 정말요?

C : (다른 이야기 중) 그리고 여자들은 또 추운 겨울에도 치마 입고도 잘 다니잖아요.

D : 대체 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정도로 외모에 관심도 많고 관리를 잘 하는 거죠?


<상황 3>

E : 성형한 여자들 보면 다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특유의 그 느낌.

F : 강남 가면 많이 보인다고 해서 ‘강남 미인’이라고 하잖아요. 아니면 ‘성형 괴물’.

E : 아, 괴물은 좀 그렇고… 막 좀 그런 티나는 화려한 예쁨? 이런 것에도 관심 있는 여자들이 꽤 많더라고요.

F : 그쵸? 아무래도 꾸미고, 날씬한 것에 관심 많고 그러면 화려한 게 미의 기준이기도 하죠.

E : 그런 여자들은 왜 그런 걸 예쁘다고 생각하는 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이 발화자들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만큼 누구나 여성의 특징이라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여성의 대표적인 이미지라 여기는 것에 대해 쉽게 일상적으로 이야기한다. 본 글에서는 이 사회 속 ‘여성상’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왜 여자들은 꼭 _____ 하냐” 는 식으로 말하는, 이 화법에 대해 정리하고자 한다.


가부장제가 여성혐오적 맥락을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본질화’ 라는 전략이 있다. 본질화란 어떠한 개체의 특성을 자연/과학적 원리로 인해 진화하거나 내면화된 본능인 것처럼 만드는 것이다. 즉 마치 여성과 남성(인간)은 뇌구조 혹은 호르몬부터가 달라서 그렇게 태어났다는 듯 만드는 전략.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 아마 저자는 몰랐겠지만 - 대표적인 본질화 전략이 활용된 책의 사례다. 여자와 남자는 본질부터 다르며, 그렇기에 서로를 영영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내용. 왜 그렇게 ‘본질부터’ 다르다 느껴질 정도로 사회학적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해 하지도 않으며, 그 차이만 조명하는 내용이다.

이 사회에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여성스러움, 여성성’이 여성 대부분 개인들의 실제 특징들로 만들어 진 것인양 말하는, 이 “왜 여자들은 꼭 _____ 하냐” 라는 화법이 문제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여성의 기본값을 ‘여성스러운’ 사람으로 상정하기에,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들을 쉽게 ‘여성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흔히 말하는 긴 머리, 여성복 의류, 여성들의 말투, 메이크업, 여성들의 취미라 일컬어 지는 것을 갖추지 않은 여성을 대상으로 “야 네가 무슨 여자냐?”, “넌 솔직히 여자 아니지.” 같은 발화들이 쉽게 발생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약속된 여성성이 존재하며, 이것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따르는 것이라는 명제가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화다. 젠더 규범과 역할에 관계 없이 본인을 여성이라 정체화 한 여성은 누구나 여성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마치 여성들 본인의 선택으로 이 사회의 ‘여성성’이 유지되는 것처럼 만들어, 가부장제의 여성성 소비와 재생산에 대해서는 교묘하게 덮어 버린다. 소개팅날 발 뒤꿈치가 다 까질 정도로 발이 아픈 구두를 신고 온 여성에게 “그러게 왜 그런 걸 신었어?” 라고 묻는 것, 피부에 뾰루지가 온통 나고 트러블이 났음에도 꾸역꾸역 메이크업을 한 여성에게 “아니 넌 피부가 이 지경인데도 화장을 하고 싶어?” 라고 묻는 것. 정말 그들이 그렇게 욕망해서 높은 구두를 신고 메이크업을 했을까? 진심으로 욕망했다면 왜 그들은 본인의 신체에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욕망하기 시작했을까?

셋째, - 재미있게도 첫번째 이유와 상충되는 내용이다 - 첫번째 이유에서 언급했듯 ‘여성스러움’을 여성이 갖는 당연한 것으로 보면서도, 오히려 동시에 하찮고 한심하며 부정적인 어떤 것으로도 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어떤 여성에게는, ‘다른 평범한 여자들과는 달리’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현명한 개념녀라는 칭호가 붙게 된다. 이 경우 평범한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 비난이나 비아냥이 아닌 칭찬과 훈장의 개념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 것이 첫번째 문제점에 등장했던 사례와 정반대이면서도 늘 우리 곁에 동시에 존재하는 아이러니이니, 웃기지 않은가. 여성은 여성성을 수행해도 사치와 허영 등으로 비웃음 당하고, 수행하지 않아도 여자가 아니라며 비웃음 당한다는 의미다.

문제점 1과 2는 여성성에 대한 획일화된 대상화와 타자화가 작동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이며, 문제점 3은 여성성의 기호로써 작용하는 성격, 행동, 스타일, 양상 등을 무조건 하찮고 낮은 것으로 취급한다는 점에서 여성혐오적이다.


“여자는 ______ 해야 한다”

“여자는 ______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자들은 대부분 ______한 경향이 있다”


어쨌든 위 문장들은 모두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 큰 궤를 함께 하는 커다란 여성혐오적 시선의 연장이다. 위 모든 문장들은 아래와 같이 치환했을 때 정확해진다.


“여자는 _______ 하도록 길러졌다.”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그런 특성을 갖게 되었는지에는 관심이 없고 여성들이 마치 원래부터 그래왔고 본인들이 선택한 양, 말하는 화법이 환멸날 만큼 무식한 소리인 이유다. 여성은 태어나기도 전 ‘여성’으로 지정받는 순간부터 여성으로 길러진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 2의 성’) 발뒷꿈치가 까지고 피가 흘러도 그것이 예의니 구두를 신고, 숙취로 피곤해 죽을 것 같은 날도 그것이 예의니 꾸역꾸역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여성은 수많은 매체와 콘텐츠에서 이미 다뤄졌으며 그것이 고통스러운 여성의 미덕이자 이미지라고 그려졌다. 소개팅에 운동화를 신고 나가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는 여성을 우리 모두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사람이 무인도에서 혼자 나고 자랄 수 없듯, 사회의 거대한 ‘여성성’에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여성성으로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메이크업을 과감히 모두 포기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횟수를 줄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취사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어떤 여성이 아직까지도 메이크업을 해서 여성성을 유지시키고 있느냐’가 아니라 ‘왜 여전히, 메이크업이 선택의 문제인 것은 여성 한정 대상인가’ 일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편견을 여성 개인들이 만들어 온 것이 아니듯 그것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는 것도 여성 개인들의 책임이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길러져 온 우리가 존재한다. 당신이 어떤 ‘여성성’이란 매우 견고하게 존재하며 이는 대부분 여성들의 실제 성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게으르게 믿는 한, 여전히 국한된 여성성에 커다란 인간을 가두는 것과 다름 없다. 당신의 방금 그 말은 또 어떤 ‘여성’을 만들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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