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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Sep 30. 2021

명절을 추억


내가 기억하는 추석의 모습은 단출했다.

사실 우리 집에 명절 손님으로 오는 사람은 작은 아버지뿐이었다.


할머니는 아픈 다리를 하고서 혼자 장을 봐오시는 것으로 시작되는 명절이었다. 한 번에 많은 장을 보지 못하니 두세 번씩 장바구니를 끌고 시장에 가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손수 장을 보셨다. 엄마는 일을 한다는 핑계와 함께 밤 시장 일을 마치고 집에 와 새벽잠에 들었다 알어나 보면 늘 할머니의 명절 장이 가득 있었다.


할머니의 지시 아래 엄마도 바삐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할머니가 만들고 엄마도 만들고, 그렇게 천천히 만들다 보면 어느새 명절 전날에 모든 음식이 완성된다.


나는 명절 음식이 참 좋다. 손도 많이 가고 딱히 먹을 게 없다지만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제사상에 올려놓은 사탕을 무척 좋아했다. 흰색과 빨간색이 석여 박하맛을 내는 그 사탕은 할머니 집 명절 상에 꼭 올라왔었다. 한 번은 그 사탕이 없이 제사상이 만들어져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가운데 강정이 들어있는 사탕으로 바뀌었다. 아마 시골 장에서도 변화한 제사 음식이었을지 모른다. 어릴 때 멋모르고 좋아하던 그 사탕은 명절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었다.


문득 할머니 집에서 함께 지내던 명절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침이면 가마솥 가득 끓여 놓은 뜨거운 물을 마당에 있는 대야에 부어 재래식 펌프로 끌어올린 차가운 지하수를 섞어 모두가 씻고 채비를 하고 나는 이불을 돌돌 말고 툇마루에 앉아 아빠와 삼촌을 바라보며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으로 바라보던 그때의 기억, 그림처럼 다정한 풍경 속에서도 엄마는 부엌에서 할머니와 음식을 하고 계셨겠지...


할머니의 정겨운 앞마당이 있는 집을 뒤로하고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집에서 시작된 명절 제사, 나는 기름진 명절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음식을 도운 적은 별로 없었다. 늘 엄마와 할머니가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나에게 명절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동안 밀린 잠을 숙제처럼 몰아 치우는 휴식 같은 날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어렸을 적에는 작은 어머니와 사촌들도 모였었다. 작은 어머니가 아프시고 사촌들이 조금씩 크면서 명절에 함께 하기란 쉽지 않았다. 명절 당일날은 제사를 끝내고 고모네 집에도 가곤 했는데, 그마저도 조금 크고 나서는 잘 따라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꽤나 조용한 명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결혼을 하고 찾아간 시댁의 명절은 정말 재미있었다. 우리 집과는 다르게 식구가 많아 정말 북적대고 음식도 여럿이 둘러앉아 많이도 했다. 음식을 만드는 중간마다 조금씩 덜어내 술상에 안주로 올리고 끼니마다 챙겨 먹는 모습이 정말 명절 다운 모습이었다. 아마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내가 가장 즐거웠던 명절의 모습이다.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 당일날 시 할머님 댁에서 올라오자마자 나와 남편은 친정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부천까지 가는 길이 늘 40분 정도면 충분했는데 명절의 도로 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야박하지만 엄마에게 명절 당일은 못 오겠다고 못을 박아버렸다. 그 이후로는 늘 명절 전 주에 다녀오곤 한다. 쌍둥이를 출산 한 이후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아 찾아가질 못했다. 애 넷을 데리고 움직이기란 두려운 일이었다.



임신하고 오랜 시간을 차에 앉아 시골길을 내려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몸도 마음도 불편한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 결국 집으로 올라오는 길은 남편과 단둘이 ktx를 타고 올라오기로 했다.

그나마 시간이 단축되니 조금 살만 했다. 잠도 편치 않았다. 언제 빨았는지도 모 르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으면 잠잠했던 비염이 내 코를 괴롭힌다. 자는 내내 훌쩍거리며 제대로 된 잠을 자기란 쉽지 않다.


결혼 후 처음 찾는 명절 자리에서는 인사하는데만 시간을 모두 쏟은 것 같았는데 그다음 명절이 되고 나니 뭘 하고 있어야 할지를 눈치 보며 서 있는 것도 곤욕이었다. 명절에 늘 할머니와 엄마의 손에 맡긴 티가 너무 나는 것도 조금은 부끄러웠다.

하지만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결혼하면 다 할 텐데, 뭘 벌써부터 하고 그래?" 우리 엄마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도 일하느라 제대로 배운 살림이 없어 시집와서도 할머니 등살에 고생했을 텐데 그런 말을 늘 달고 살았다. 딸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다 같겠지! 나도 내 딸에게 결혼할 테니 먼저 일하라고 시키고 싶지는 않다.

아이를 출산 한 뒤로는 나뿐 아니라 아이까지 잠을 뒤척이고 못 자고 있으니 정말 명절날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애를 재우던 말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티브이를 본다. 밤이 늦어도 줄어들지 않는 소음에 아이도 나도 계속 뒤척거린다.

명절에 만난 형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원래  되기 전에는 시골에 내려가고   그러던데,  그래요?"

나라고   되기도 전에 내려가고 싶어 내려왔겠습니까, 애를 안고 있는 나한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순간도 달갑지 않았다. 정말  되지 않은 애를 데리고 난생처음으로   시골길을 오가며  안에서 땀을 흥건히 흘리며 목청이 터져라 불편하다는  울어대는 아이를 달랜다고 차에서  번을 내리고 올라타고를 반복하다 결국 감기에 걸렸던 기억이  머릿속에 또렷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를 우스갯소리라며 떠들고 있다가는 어른들의 옛날 얘기를 구박처럼 들을 것도 빤한 일이었다. 지금도 내 아이를 앉혀 놓고 옛날 얘기를 하고 있는 나와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난다.

언제 우리도 이렇게 늙어 버렸냐고, 안 그럴 같던 우리들도 그렇게 변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 얘기에 또 빠져들고 만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 것 같아 말없이 또 조용해진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명절에 혼자 보낸 적이 있었다.

양주로 이사 온 3년 전, 이사를 오자마자 곧 추석이었다. 나는 그때 만삭의 쌍둥이를 뱃속에 두고 있었으니 처음으로 명절에 집에 있으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만삭의 배를 하고도 혼자 있으려니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명절 전날 식구들을 보내고 집 앞을 나왔는데 정말 갈 곳이 없었다. 집 앞에 문을 연 가게는 설빙과 던킨도너츠 매장뿐이었다. 신도시로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문 연 가게가 정말 많지 않았다. 그때는 운전도 할 줄 모르고 무작정 옆 동네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섰다. 버스 정류장 몇 개를 지나 하차 한 그곳은 우리 동네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저녁시간에 문을 연 곳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셨다. 커피를 마시고 나와 어수선한 길을 걸었다. 길을 걷다 다시 돌아와 다이소에 들렀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수납용품이 필요했던 터라 몇 개의 수납용품을 구매해 나왔다. 나와서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파리바게트에 들러 빵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여유롭고 좋았다. 자잘한 물건들을 닦아 넣어 살림을 정리했다. 늦은 밤 영화도 한편 본 것 같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느새 훌쩍 오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명절 당일이 되었다. 어제 사놓은 빵을 먹고 동네를 나섰다. 여전히 문연 곳이 하나도 없었다. 조용하고 조용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들어와 청소를 하고 낮잠을 잤다. 기름진 명절 음식은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명절을 보냈었다. 꽤나 허전한 명절이었다.


이제는 팬더믹 속에서 함께하는 우리는 명절도 마음처럼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올해 추석을 또 그리 허전하게 보냈다. 쌍둥이 형제와 나는 집에 남겨져 명절날을 보냈다. 그도 다행인 것은 3년 전 모습과 달리 우리 동네도 문을 연 가게들이 꽤나 많았다. 마트도 가고 동네 한 바퀴도 돌아보았지만 3년 전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당일날은 문 닫은 곳도 많았지만 이제는 갈 곳이 조금은 더 많아졌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아이들도 크고 동네도 조금 더 번화하고 그렇게 변화된 시간을 추억해 본다.


또 이렇게 집에 몸과 마음이 편해진 명절을 보내고 나니 그립다. 그 북적거림도 그립고 끝없이 쏟아부어 내는 기름 속에서 익고 있는 전도 그립다. 나와 내 아이들이 다시 그 추억을 함께 그릴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의문도 남겨 본다.


그래도 명절은 또 명절다워야 제맛인데, 아쉽고 심심했던 올해의 추석을 지나며 또 이렇게 마음을 달래 본다. 함께할 수 있는 명절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라본다.


오늘따라 할머니의 녹두전과 송편 그리고 손만두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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