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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Nov 11. 2021

그때의 꽃들

꽃이라 하면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꽃은 금방 시들어 돈 아깝다."는  말을 자주 내뱉던 엄마의 품에서 자란 탓 일까, 나는 세상 촌스러운 꽃이 장미와 안개라는 신념으로 살아 간 사람 중 하나다.


둘째를 출산하고 서 너 달이 지났을 때쯤 어머님께서 둘째를 보러 집에 종종 찾아오곤 하셨다. 아들 둘만 키우셔서 그런지 딸인 둘째에 대한 애정이 무척 넘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애는 어차피 내가 보고 있으면 되니, 혹시나 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그 시간에 나가서 뭐 좀 배우고 오는 건 어떠니?"


막연히 무엇을 배운다고 생각하니 정말 고민이 많았다. 처음으로 검색해 본 글씨가 '공방'이었다. 공방을 검색해 보면 배우고 싶은 무언가가 딱 떠오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고민만 되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인스타그램으로 우연히 전주에 있는 한 꽃집의 피드를 보게 되었다. 꽃도 예쁘고 다발도 무척 컸다. 그 사진에 끌려 근처 꽃집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꽃집도 몇 개 없지만 모든 꽃집에서 클래스를 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검색의 검색을 이어 가다 보니 우연히 한 피드를 발견했다. 아직 꽃집을 운영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주문제작과 클래스를 열고 있다는 내용을 찾아보게 되었다. 정말 몇 장으로 사진에 말 그대로 홀려 연락을 했고 수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수업을 하러 가는 길이 아주 먼 거리도 아니지만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향하는 순간 만으로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것도 혼자라니!

지금이라면 힘들었을 테지만, 그때 그 거리는 나에게 충분히 적당한 거리였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난 나의 꽃 선생님은 다정한 분이셨다. 여리 여리 한 몸이지만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따뜻한 차 한잔도 정성스레 담아 주시고 꽃을 다루는 손끝은 섬세했다. 말과 행동이 따뜻한 분이었다.  생각과 다르게  꽃을 만지는 일은 그리 고상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커다란 꽃다발을 만지고 있으면 생각처럼 잡히지 않아 쥐락펴락하다 보면 어느새 손의 열기로 따뜻해지기도 한다. 많지 않다고 생각해도 꽤나 무겁다. 어깨와 손가락 끝으로 온 힘을 쏱아낸다.

오아시스에 꽂는 일도 쉽지 않다. 줄기가 약한 꽃은 꺾이지 않도록 힘 조절을 해야 한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무작정 수정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적당한 계산 아래 선의 부드러움을 만들어내야 한다. 화병에 꽂다 보면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꽃의 얼굴이 돌아가기도 한다.

한 번은 둘째의 돌을 앞두고 화관을 만들었었는데 왜 그 작은 화관이 그리도 비싼지 알 것 같았다. 철사를 쉬지 않고 꼬아대는 통에 손가락 끝이 욱신거리고 발개졌다. 마무리는 고상하고 아름답지만 이 일 역시나 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무리된 꽃들을 품에 안고 돌아오면 항상 기분이 극에 달한다. 한두 시간의 여정이 나에게는 무척 큰 힐링이 되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꽃의 이름도, 꽃을 다루는 방법도, 색감을 사용하는 방법도 많이 보고 배웠다.


수업 후 남은 꽃까지 싸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주방 한편에 꽃들이 가득했다. 그 주에 만들어 온 작품은 항상 식탁 위에 그리고 남은 꽃들은 주방에 꽃아 두었다.

사실 집에 넓지 않고 아이들도 있다 보니 꽃을 두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주방에 꽃을 두면 복이 들어온다는 말도 들어본 것 같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방에 늘 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번은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오신 선생님께서 꽃가위를 선물해 주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꽃과 가위 사진을 열심히도 남겨 놓았다. 그 덕에 가지고 있던 꽃가위는 찬밥신세가 되어버렸지만 정말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기뻤다. 그 가위는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어 꽃을 다듬을 때마다 선생님 생각이 난다. 새로운 가위를 또 사고 싶어 검색해 보다가도 쉽게 바꾸지를 못한다. 아직은 쓸 만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과 꽃에 대한 열정이 그득하다.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났지만 수업은 채 1년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많이 아쉬웠다.

내 상황도 그렇지만 선생님도 더 먼 곳으로 가셔서 꽃집을 운영하시게 되다 보니 두어 번 찾아가고 그 마저도 발길이 끊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에 대한 꽃 사랑은 여전했다.

창동 꽃시장에 들러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오기도 하고 다발을 포장해 선물을 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못 하면 가끔 집 앞에 있는 오래된 꽃집에서 꽃 몇 송이만 사들고 와 집에 꽂아 두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식물은 잘 못 키우지만 꽃은 종종 사다 식탁에 두곤 한다. 기분에 따라 사들고 오는 한송이의 꽃이 꽤나 기분전환에 도움이 된다.


양주로 이사와 나는 정말 예쁜 꽃집을 만났다. 그를 시작으로 이사 오기를 마음먹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주  의미이  인연이다. 그렇게 지금도 나는   송이에게 위로받고 감동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꽃집에 들러 꽃집 사장님들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도 하고 사고 싶은 꽃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분은 언제나 매우 즐겁다.


어제도 꽃집에 들러 공작초와 알스트로메리아를 사들고 왔다.

주방창에 자리 잡은 꽃들을 보고 멍하니 앉아있으니 그냥 좋다.


나는 새로운 인연, 새로운 시작, 새로운 만남 등에는 늘 꽃을 떠올린다.

작은 의미를 담아 선물하는 그 꽃이 꼭 행운은 전해 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알스트로메리아도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는 꽃 중에 하나였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변해 버렸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은 없는 것 같다.

알스의 꽃말을 찾아보니 '새로운 만남, 배려, 우정'이라고 한다.

앞으로 알스도 자주 선물해야겠다. 가끔 찾는 꽃말도 작은 재미가 된다.


그래서 문득 함께 글을 쓰는 멤버들에게도 마음을 담아 알스트로메리아를 한 아름 선물하고 싶다.

올해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인연이자 새로운 시작이 되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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