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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댁민댕씨 Jul 23. 2021

양주댁 민댕씨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서울 구의동에 살았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보는 정환이의 집처럼 생긴, 3층은 주인집이고 1층도 아닌 지하도 아닌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시 동생이 태어나기 전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하느라 포천에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구의동에 머물고 또다시 부천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작은 빌라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집들 앞으로 꽤나 넓은 길이 있었다. 약간 언덕진 곳에서 우리 집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과 모여 자전거도 타고 썰매도 타고 그냥 밥 먹고 집 앞에 나오면 정말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었고 우리 집은 근처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신축빌라였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넓었다.


지금 생각하면 식구는 6명인데 18평 남짓되는 빌라에서 갑자기 30평의 빌라로 이사를 가니 동생과 함께 써야 하는 방이긴 했지만 내 방과 내 책상 그리고 내 침대가 생긴다니, 그 흥분감은 감출 수가 없었다. 입주청소라는 게 없던 그 시절, 이사하기 전부터 몇 주를 식구들 모두 찾아가 새집을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모른다.


지금 이사와 살고 있는 양주의 집을 처음 보러 왔을 때 , 그때의 기억이 꽤 많이 떠올랐었다.


결혼과 함께 부천 집을 떠나 나는 다시 서울시민이 되었다.

시댁과 가까운 곳에 시혼 집을 얻고 그곳에서 첫째가 태어나고 함께 지냈었다.

전세였지만 내 나이 3살, 가족이 함께 지내던 단칸방에 비하면 꽤 크고 넓은 빌라였다.

그곳에서 2년 넘게 지냈고 우리 부부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집을 사기로 계획했다.


이사오기 전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번도 독립을 해보지 않아서였을까? 나는 집을 고를 때 그 집의 느낌을 가장 선호했다.

뒤로 가까이 붙은 다른 집 벽면의 빨간 벽돌이 거실 창을 갤러리 마냥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조금은 어두웠지만 덕분에 누군가가 우리 집 거실을 전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방은 넓고 거실과 주방과 분리된 느낌이 이 전에 살던 집과는 달라 좋았었다. 작은방을 지나 있던 베란다는 햇살이 가득 들어와 정말 따뜻하고 조용했다. 결국 또 빌라였지만 우리의 상황이나 조건에 적합했다.


첫째를 출산하고도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을 만나는 게 전부였다.

그 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만나는 사람들만 만나고 몇 안 남게 되었는데 거기에 나는 복직까지 하게 되니 육아 동지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하고는 처음으로 큰애 어린이집 친구들과 엄마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건너 건너 아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육아 정보도 찾지 않고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둘째까지 태어나고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등원 시키고 거의 모든 시간을 육아 동지들과 함께 했다. 그곳의 생활이 나는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군대 보다도 끈끈한 육아 동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했다.


어느덧 복직은 꿈도 못 꾸고 힘들고 즐거운 일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과 나의 아이들 내 가족 덕분에 재미있게 보내던 그 시간도 잠시, 나는 셋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병원에 찾아갔을 때 쌍둥이 임신 소식을 듣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그래 뭐 셋째까지는..." 하는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갔다가 정말 많이 놀라서 돌아온 기억만 난다. 둘에서 잡자기 넷이라는 차이는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아이 둘은 이제 많이 키웠다 생각했는데, 다시 신생아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남편과 이야기하다 보니 집을 넓혀 가야 하나, 아니면 지금 집에서 그냥 좀 더 살아볼까? 고민도 많이 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셋이나 넷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그때는 왜 그리 크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 이었을까?


그때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우연히 남편의 사무실을 양주로 옮기게 되었다.

남편은 사무실 주변에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주말이면 가족들을 태워 양주까지 드라이브를 하고는 했었다.

"이곳에는 아파트가 지어진데, 여기는 벌써 많이 지어졌다! 여기는 내년에 입주래..."

남편은 신이 나서는 열심히 이야기했다. 때마침 이사 가고 싶다며 노래 부르시던 어머님은 여기에 큰 관심을 보이셨고, 나와 아버님은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와서도 이사를 반대했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 아이들 친구들도 있고 모든 게 익숙해져 있는데 굳이 이사를 가야 하나 싶었다. 같은 동네에 큰 집으로 이왕이면 아파트로 이사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서울 변두리여도 집값은 꽤나 비쌌고 동네에 있는 아파트들을 모두 오래된 아파트들 뿐이어서 인테리어 비용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 빌라로 이사를 하자니 그러면 지금 집에 서 아이들을 쭉 키우는 게 낫겠다 싶었었다.


그래도 양주를 돌다보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물놀이터도 많고, 크고 작은 공원들도 많고, 중심에 있는 호수공원도 와서 보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이야기했다.

"서울은 너무 답답하지 않아? 동네에 차도 너무 많고 이런 데서 애들 키우면 좋지 않겠어?"


그 당시 큰아이가 유치원에서 나와 유치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그 아파트 주민들이 시끄럽다며 우리를 내 쫒기 바빴었다. 아이들한테 꽤나 야박하게 군다며 속상해했었는데, 그 단지 사람들이 아니면 오지도 말라는 표지판과 함께 어느 날부터 놀이터 문은 잠겨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 모두 유치원을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니 하원 후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놀기가 가장 좋았던 아이들은 주변을 배외하고 말았다.


미세먼지가 없고 날이 좋은 날은 유치원 뒤로 연결된 공원을 다니며 놀았고, 덥고 추운 날은 유치원 근처에 있는 키즈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 상황을 아는 남편은 이곳으로 이사하기를 적극 더 추천하였다.


정말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하루는 주택 단지를 구경하고 이건 아니다 싶어 아파트로 마음을 바꿨을 무렵에  계획했던 집은 아니지만 같은 브랜드의 아파트라도 구경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동산에 연락을 했고 마침 입주기간에 집이 하나 있다며 보러 오라고 했었다.


그 집이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이 집이다.


처음 이 집을 딱 들어서는 순간 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여기서 살고 싶어!" 그리고 텅 빈 집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포베이 구조의 이 집은 방마다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조금은 어둡지만 아늑했던 우리의 집보다 훤씬 밝고 포근한 거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아무것도 없는 그 집에서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이사했던 지금의 친정집 거실에 낡은 수건을 빨아 두 번을 나누어 접어들고는 두 팔에 힘을 가득 쥐며 빈집을 열심히 걸레질하며 웃고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새집을 보고 그리 좋아했었는데... 그리고 돌아와 이 집의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신축이라 깨끗하고 단지 조성도 확실히 잘 되어있었다.

집은 너무나 좋은데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할 나도 나지만 아이들이 사실 가장 큰 걱정이었다.

하지만 힘들 줄만 알았던 양주의 생활도 차츰 자리를 잡고 익숙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코로나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며 우리 부부가 자주 했던 말이 "이사오길 잘했어!"였다.

이 글을 쓰면서도 정말 잘한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는 참 다니는 걸 좋아했는데 사실 넷이 되고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거기에 코로나 여파로 어딘가를 간다는 게 더욱 쉽지 않아 졌다.

그래도 집 앞에 나오면 잘 꾸며진 단지 안에 놀이터까지 갖춰져 있다 보니 이곳에서라도 바깥활동을 즐기며 그나마 조금은 안전하다는 위안을 갖고 생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전 하지 않던 걷기 운동도 요즘은 꽤나 즐기고 있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날씨를 확인하고 공원으로 나간다. 왕복 1시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많은 것이 달라졌고 나는 그 변화에 조금씩 성장하고 그 속에서 켜켜이 추억을 쌓아간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을 들고 들른 스타벅스 안에서 나를 부른다.

"양주댁민댕씨 고객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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