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기초 부분을 바닷물에 담근 채 서있는 해안가 집들은 로빈의 대표적 사진 명소가 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푸른 바닷물 위로 솟아오른 건물, 아드리아해의 코발트 물빛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부산하다.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는 건물 벽의 벽돌들, 널린 빨래, 구석에 밀쳐 둔 살림 도구, 열린 창의 오래된 나무 루버 안에서 밖을 기웃대며 너풀거리는 알록달록한 커튼 등이 로빈 주민의 삶, 그대로를 보여주는 친근함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지도 모르겠다.
< 하층부가 바다에 잠겨있는 건물들 >
바닷가 공방들
언덕 위 성당으로 오르기 위해 골목길을 걷자면 바닷가로 면한 건물들 틈새로 새파란 바다가 보여, 누구라도 발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바다가 찰랑이며 건물 벽을 적시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건물 기초석 바위 위에 서면 발목을 적실만도 하다.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수평선과 대조적으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투명한 물살을 내어주는 바다가 마냥 신기하다. 건물에는 공방들도 들어앉아 있어서 무심코 내 걸린 것 듯한 조형물들이 해풍에 흔들리며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그리시아 골목집들의 다양한 건축양식
구시가지 골목에 늘어선 석조건물의 상점 쇼윈도 안에는 기념품들과 근동의 특산물인 라벤더 보라색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회색 벽의 묵직함에 생기를 입힌다. 좁은 골목 가로지르는 나지막한 돌 아치 밑으로 예전 이 거리를 오갔을 젊은 연인들의 로맨틱한 story가 상상된다.
연인들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봤음직한 이층 석벽 돌집의 주민들!
'Back to the past!'를 외치면 멈춘 동영상이 play를 시작하듯, 스톱모션으로 정지되어 있던 몇 백 년 전 옛사람들이 금세 여기저기서 나타나 예전 생활 모습을 연출해 낼 것만 같다.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과 창틀에 놓인 예쁜 꽃 화분들, 오래되어 반들거리는 포석과 더불어 이 거리에 살았던 사람들과 상상의 조우를 하다 보니 내가 전생에 크로아티아 사람이었나 싶다. 연극의 세트 장 같기도 하고 과거를 불러오는 환상을 일으키기도 하는 로빈의 구시가지 골목 풍경은 실로 정겹고 감성 충만한 장소이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의 미인처럼, 더러는 헐고 녹슨 오래된 티를 그대로 간직한 좁은 골목길, 그 속에 녹아든 세월의 묘약, 그 약발을 나는 제대로 받고 있다.
돌로 포석을 만든 그리시아 골목길에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로빈 골목 갤러리들
성당으로 오르는 골목길에는 갤러리와 공예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여기저기 갤러리 주인들이 구경하고 가라고 이끈다.
로빈이 베네치아 풍 옛 구시가지에 예술적 정취를 더하는 배경이 있다.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무명 화가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로빈의 건물을 임대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 로빈 골목에는 그들의 작품들이 내걸리는 갤러리와 공방을 통해 예술적 감흥을 지닌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관광객 유치라는 명목으로 국적 불명 리노베이션을 실시하여 특색을 상실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사례와 비교된다.
더하여,
조금만 걸어가면 쉽게 바다에 발목을 적실수 있는 아드리아해, '천혜의 자원'도 일조하는 것 같다.
푸른 바다와 아름다운 장원의 녹지대가 사람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근접해 있고, 그 사이사이에 안겨있는 오래된 골목길에 내려앉은 장구한 세월의 흔적을 가치롭게 보존해가는 로빈 사람들이야말로 현대 관광산업의 진수를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원에서의 점심식사
점심때가 돼서 테이크 아웃으로 덮밥을 샀다. 먹을 장소를 물색해보니 바닷가 벤치는 볕이 강하다.
낮은 담장 안에 예쁘게 화단을 가꾼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가 보니 큰 키의 소나무들이 그늘을 이루는 공원이 나타났다. 직장인들 몇 팀이 서넛씩 모여 앉아 점심식사 중이다.
우리도 벤치에 사 온 점심을 풀어놓는다. 디저트로 과일 깎아 챙겨 온 짝꿍은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가져왔으니 커피도 하잔다.
언제나 민첩하고 손끝 야무진 그녀는 재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즉석 먹거리를 준비하는데 천부적 재능이 있다.
Full course 점심 후 커피 향속에 피어나는 나른한 이 만족감은 자유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패키지여행을 다닐 때, 전세버스에서 내다 보이는 거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여행자들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머무르고 싶을 때와 떠나고 싶을 때를 맘대로 정하는 것이 여행자의 발길 아닌가!
단체이동의 정해진 약속시간에 행여 늦을 가봐 자유시간을 주어도 멀리 가지 못하고 집합지 주변을 뱅뱅 도는 소심함으로 점철된 단체 여행을 벗어나고픈 욕구가 강했었다.
이제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건상상, 걷기가 허락되는 한, "자유여행이 답이다!"
점심을 먹은 주택가 공원
점심 먹은 자리를 정리하고 가장 중요한 방문지 성 에우페미아 성당으로 가기 위해 구시가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