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꿈에 비친 나를 보며
아이와 나란히 누웠다. 불 꺼진 방의 대화 시간.
“엄마, 내일 재택이야?”
“연차 쓰면 안돼?”
직장어린이집을 함께 다니고 수차례 엄마 야근을 기다려 본 아이는 회사원의 용어가 너무 익숙하다. 물음표 끝마다 그것들이 안 되는 이유를 조곤조곤 붙여 알려준다.
“그럼 오전 반차만 쓰는 건 어때?”
포기를 모르는 어린이. 다음에 꼭 필요할 때 쓰겠노라 웃으며 약속한다. 이후 오늘 있었던 일과 감정을 서로 짧게 묻고 답한다. 이것이 아이가 정한 우리의 잠자리 루틴. 훗날 분명 사무치게 그리울 장면이리라. 다만 미래 시점의 과거까지 살피어 현재를 소중히 여길 여유가 없는 엄마가 지금 여기에 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얼른 좁은 침대를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잠 부르기’만 하면 된다.
“잠아!”
손끝에 잠의 어깨 남짓이 닿은 순간, 조막만한 손이 내 입을 막는다.
“잠아, 잠깐만? 엄마, 그런데 엄마는 왜 회사원이 되었어? 지하철 기관사가 될 수도 있고 의사가 될 수도 있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데 왜 하필 회사원이 된 거야?”
하필이라는 단어가 심상치 않다. 눈이 번쩍 뜨인다. 동시에 입도 뗐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평범한 회사원 말고 지하철 기관사나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회사원이 어때서? 억울한 마음이 앞서는 바람에 할 말들이 머릿 속에서 서로 엉킨다. 그러다 이내 아차 싶다. 나와 남편은 아이 앞에서 출근하기 싫은 티를 꽤 많이 내었다. 무늬만 어른이고 부모일 뿐 우리도 한낱 철없는 월급쟁이인 것. 사회초년생의 열정보다 가족이 우선인 생계형 직업인으로서의 관성이 길어진 우리는 퇴근 후 그 날의 회포를 푸는 것이 익숙하다. 거대한 분노나 원망이라기보다 생활인 수준의 넋두리와 지친 고민들이다. 혹시 한명이 먼저 그만둘 수 있다면 서로 자기가 먼저라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그것이 가족에게서 얻는 위안이기도 하기에. 오랜 밥벌이의 고마움이나 길고 짧은 성취들, 사회생활에서 얻는 에너지 따위의 좋은 점은 생략할 뿐이다. 아이 앞에서 가능한 한 돈 얘기나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는 안 했어야 했지만 결국 들킨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마냥 즐겁게 일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고 불행해 보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내가 선택한 회사에서 선택한 직업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회사원은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회사는 종류가 많아. 지하철 기관사도 교통공사 회사원이야. 어떤 일을 하는 회사원인지가 다른 거야. 엄마는 회사에서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말이 길어진다.
“그리고 엄마 회사랑 아빠 회사 둘 다 되게 좋은 회사야. 엄마가 학교 다니면서 배운 것들을 잘 쓰려고 하다보니 그걸 잘 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간 거지. 피아노학원 선생님이나 의사도 마찬가지야.”
제대로 된 말을 하고 있는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이가 굳이 이런 설명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닌 걸 안다. 좀 더 행복하게 일하는 엄마 아빠여야 같이 편안함을 느낀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뾰족하게 긁지 못하는 엄마의 대답에 아이의 집중력도 흐려진다. 흐지부지 대화를 마무리 짓고 그간 기다려 준 잠을 다시 불렀다. 오래지 않아 잠이 아이 눈꺼풀에 내려앉았다. 안정된 숨소리를 듣고도 곁을 떠나지 않고 누웠다. 그러게, 내가 왜 회사원이 되었더라?
학창 시절의 장래희망으로 생각했던 몇 가지 직업에 대해서는 여러 실습과 고민 끝에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관심 있는 업종의 기업에서 기획이나 창작에 가까운 업무를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시작의 천진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과정은 험난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서류 탈락을 한 나날을 기억한다. 실패가 지겹게 쌓이는 서러움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왜 내가 국문과 간다고 할 때 안 말렸어!” 대상이 틀렸음을 알지만 기어이 그 곳을 택해 흐느꼈다. 연이은 낙방은 점차 조건이 들어맞는 모든 공고를 향한 공격적 도전으로 이어졌다. 간신히 얻은 인턴 경력을 발판으로 다음 학기에 몇 개의 합격 결과를 얻었다. 나는 그렇게 사회로 나와 회사원이 되었다. 거듭 겸손해지고서야 얻어낸 소중한 결과였다. 그래서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말은 배부른 소리다. 하지만 아이의 눈높이에서 좀 더 그럴싸한 설명이 필요하다. 직무로 말하자면 사업전략 또는 사업기획가라 할 수 있겠다. 신사업 조사와 보고서 작성, 경영지원 업무도 하는 전문 사무직이라고도 해 볼까. 아, 아무리 꾸며 쓰려 해도 그저 평범한 회사원인 것 같다.
서른 중반이 넘으면서부터 연락은 끊겼지만 기억이 선명한 친구들의 근황을 우연히 보고 듣는다. 서투르고 젊었던 이들이 포털 검색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누군가가 되었다. 알던 얼굴 그대로의 사진이 반갑다. 어쩜 그리 가지각색의 길을 갔을까. 업력을 쌓아올린 노력이 대단해 보인다. 반가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스스로를 향해 비교의 잣대를 들이댄다. 같은 시간 나는 무엇이 되었나. 우울의 굴레에 빠져든다 싶을 때쯤 놀라 얼른 발을 뺀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다.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인이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밥벌이를 하며 저녁마다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내가 되었다. 대단하지는 않아도 직업인으로서 나만의 경험과 특기를 다져올린 내가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 직업인으로서의 나는 언제든 과거형일 수 있지만 한번 된 엄마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이다. 한 가지의 색으로 설명할 수 없는 두꺼운 층. 그 위에 언제든 한 겹 두 겹 다른 명함을 붙이고 엮고 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훌륭하다. 이렇게 쓰며 지하철 기관사나 의사가 아니어도 괜찮았던 나의 시간들에 안도해 본다.
요즘도 가끔 아이는 열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도서관 사서랑 요리사도 돼야 하고, 버스 기사도 할 거고. 어휴, 너무 많아. 어쨌든 나는 평.범.한 회사원은 절.대. 안 할 거야.”
우리에게서 어떤 얼굴을 봤기에 이렇게나 부정이 확고한지. 이 땅의 평범하고 대단한 회사원들에게 면목이 없다. 하지만 그 덕에 오늘도 엄마 아빠는 일하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에도 신경 쓰자고, 더 멋진 우리가 되자고 다짐한다. 잠을 부르기 전 엄마의 지나온 명함과 시간들을 따뜻하게 들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