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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리 Jul 29. 2023

이 질문엔 뭐라고 대답하나요?

가끔 괴롭고 왕왕 즐거운 질문의 늪

내 자식이 아니라 조카가 되었든 손자녀가 되었든, 말을 튼 아이가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면 종종 겪었을 것이다. 바로 질문의 늪, 질문의 무한루프.


단언컨대 어린아이는 질문의 화수분과 같다. 기특한 질문이라 여기며 정성껏 답하고 나면 쉴 틈 없이 다음 질문이 밀고 들어온다. 다음, 그다음도 가차 없다.


양적인 면에서만 지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더한 건 대답의 질에 대한 고민에서 온다. 한 자릿수 나잇대의 어린이가 큰 고민 없이 내뱉는 물음표가, 대답하는 어른에게는 일생에 한 번도 의심하거나 고민해 본 적 없는 난해한 질문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잠깐 사이 학창 시절에 배운 글자의 파편들이 둥실대고 우주 저 너머에 다녀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파고들자면 나도 잘 모르는 사실이라 벽에 부딪치고, 잘 아는 것이라 해도 눈높이에 맞춰 대답하기가 어렵다. 모두 답하려 들지 말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요령껏 마이크를 넘겨보라는 조언도 들었다. 또는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려 하기보다 수준에 맞춰 재미있게 말해주기만 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한때는 아이의 질문들이 하도 재미있어서 그림일기를 그렸다. 입만 열면 보물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라 기력이 있을 때면 메모장을 켜서 대강 써 놓았다. 흘려보낸 것들이 훨씬 많고 나중에 읽어보면 맥락이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실시간 자동 녹음기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발달 시기별로 조금씩 달랐던 말들을 떠올려 본다.






서너 살 때는 보이고 들리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에 대한 "왜?"의 질문이 가장 많았다.


하늘에서 왜 우르 쾅쾅 소리가 나?
왜 멀리 있는 건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크게 보여?
왜 가로등을 직접 보면 눈이 부셔?
입은 왜 뚜껑이 있고 코는 왜 뚜껑이 없는거야?


이때 처음, 문과적 지식만으로는 정확한 대답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간 상식이 적지 않은 어른이라 자평했는데 아이 눈을 피해 급하게 검색을 해야 하는 일이 자꾸만 생겼다. 세상을 갓 마주한 인간에게는 오감으로 즉각 만나는 물리적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먼저다. 인간 사회의 윤리적 문제나 사고방식, 문학적 감상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이 꽃은 왜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이 꽃은 왜 노란색인가?'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남편과 농담 삼아 인간의 원초적인 질문은 자연과학이라고 말했다. 뼛속 문과 인간 둘, 아주 조금은 무능한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인터넷에서 본 적 있는 영상이 생각났다. 간신히 찾아 덧붙인다.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까지, 미취학 아동기에는 유치원을 다니며 제법 머리가 굵어졌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자기 생각에 이치에 맞지 않다 여기는 것들이 생겼나 보다.


엄마, 사람이 울고 싶지 않은데도 눈물이 날 때가 있지?

그렇다고, 엄마도 그럴 때가 많다고 대답했다. 영화 드라마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그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신나게 덧붙여 얘기했다. 이어질 항변을 상상도 못한 채.


“그러니까아- 산타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는 건 틀린 거야.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안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에-"

내 대답이 이 결론에 쓰일 줄이야. 당황했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산타 할아버지는 떼쓰는 울음만 알아보시는 거라 둘러댔다. 그러게 왜 <울면 안 돼> 노래는 예외조건도 달지 않고 제목을 그리 단호하게 지으셨나, 휴.


"유치원에서는 우리 몸의 70프로가 물이랬는데 책에서는 왜 80프로라고 해?" 와 같은 질문에는 별 수 없이 또 검색 창을 켠다. 교육 자료들끼리 합을 좀 잘 맞춰 주시라.






의견이 더욱 명확해진 여덟 살 (바뀐 나이로는 여섯 살) 아이는 일종의 ‘빌드 업’ 화법마저 구사한다. 어처구니없어 나는 이를 '소크라테스 문답법'이라고도 칭해 본다. 답하는 자가 문제와 해결을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화법. 이제 보니 앞에서 말한 산타할아버지 얘기도 여기에 포함되는 것 같다.


아빠, 아빠는 마우스가 손상되기를 원해?


무슨 말인가 싶다. 당연히 아니겠지.


음, 그럼 아빠는- 식탁이 긁히는 것을 원해?


남편이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한 후 아이의 눈길을 좇아본다. 시선이 머문 식탁 위에는 지난밤 쓴 노트북과 무선 마우스 하나가 놓여 있다. 요즘 한창 방과 후 수업으로 컴퓨터에 대해 배우는 아이는 마우스패드를 쓰는 이유에 대해 꽤 인상 깊게 들었나 보다. 의도를 파악한 남편이 한 곳에 치워둔 마우스패드를 끌어온다. 나 원 참 소리와 함께.


일상생활과 책, 영상에서 다양한 표현이 쏟아지다보니 단어 뜻에 대한 질문도 많다. 과학 질문보다는 낫다 여기며 한자 뜻을 빌려와 성의껏 대답해 준다. 그러고도 가끔 말문이 막히는 어른은 몇 십년만에 최신개정판의 어린이 국어사전을 주문한다. 유행어는 오히려 내가 너에게 묻고 싶다.






오늘도 채 기억나지 않는 수십 개의 질문에 대답한 하루였다. 일상이 버겁게 느껴질 때 마침 무차별적인 물음표가 꽂히면 잠깐동안 스트레스가 치솟기도 한다. 그러나 한 박자 쉬고 들어보면 웃음이 나거나 ‘그러게? 그게 왜 그럴까?' 하고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배나 선생님인 양 가르쳐주려다 도리어 내가 유레카를 외친다.


세상을 이제 막 알아가는 인간을 가까이 하며 덩달아 몰랐던 세계를 만난다.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질문들이다. 머지않아 사춘기에 가까운 때가 오면 이런 대화조차 속 터지는 뾰족함이 되겠지. 그러니, 지금을 좀 더 즐겨야 겠다.









 질문-대답 관련한 예전 그림일기를 가져와 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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