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부르지 않는다. 희뿌연 안개 너머로 그렇게 서 있는데 기다리는 소리 들리지 않는다. 내가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떠나야 할 시간이 갑자기 다가올지 모르는데. 그 소리 아직 들리지 않는다.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나의 운명이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름다운 시간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인지 나 자신조차 분별할 수가 없다. 네가 없어야 그 소리 들릴 터인데, 소리의 주인공이 너이기에 어쩌면 그 소리를 기다린다는 것이 희망고문이 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이 밤은 깊어가고 있으나 그 소리 기다리는 나의 마음엔 이 밤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