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도 버겁기에

by 지나온 시간들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소중한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하면 좋으련만,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나의 영역을 넘어서기에 어찌 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한강 <붉은 꽃 속에서>는 동생을 잃고 더 이상은 세상에 미련이 없어 출가를 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또 삼백스물네 번의 절을 하는 게다. 윤이가 사라진 뒤 매일 아침 절에 다니기 시작한 어머니는 사람의 고민이 백여덟 가지라서 백여덟 번의 절이 있다고, 당신은 그것을 세 번 하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 번 절할 때마다 한 가지씩의 고민이 삼분지 일씩 없어지는 걸까. 그러나 절을 마치고 나오는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초췌했고 그늘져 있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어머니는 굽 낮은 구두를 꿰어 신었다. 떠난 사람 욕만 했지, 정작 나헌테 있는 생명은 지킬 줄 몰랐어요.”


우리는 흔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그렇기에 그에 대해 그다지 마음 쓰지 않으며 그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소중함을 인지하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화선지에 먹으로 이름을 쓴 뒤 그는 교정의 느티나무를 보았다. 중학교에 들어와 이 교실의 창가 자리에 처음 앉던 날부터 그에게는 그 나무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그는 틈날 때마다 나무를 곁눈질했다. 해가 나거나 바람이 불거나 널찍한 잎사귀에 빗발이 후두두 떨어지거나, 나무는 늘 그 자리에 다르면서도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가장 사랑했던 동생이 떠난 자리는 그 어떤 것도 대신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은 없고, 빈 허공만 울릴 뿐이었다. 자연은 변함이 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사람이 더욱 그리워질 뿐이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것도 이제와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머니의 눈이 맑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락 옆 선반에 놓인 관음보살상과 백팔 알의 염주, 천수경 따위를 물끄러미 건너다보다가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또렷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저, 머리 깎고 싶어요.

그는 다시 고쳐 말했다.

산에 들어가고 싶어요.

수분의 숨죽인 침묵이 흘렀을 때 어머니가 그의 두 손을 잡았다. 앞으로 수그린 어머니의 가슴께에서 오래 고인 물냄새가 났다.

진심이냐?

어머니의 음성은 낮게 떨려 나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이는 행복하게 살 자신도 용기도 없었다. 일상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살아가야 할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삶의 괴로움과 고통의 문제가 아닌, 평범한 일상조차 그 사람이 없으면 버겁기에 소녀는 출가를 했던 것이 아닐까? 잃은 것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자신마저 버리고 산으로 갔던 것이 아닐까?


KakaoTalk_20230307_112135407.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선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