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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03. 2023

끝까지 옆에 있어 준 사람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자신을 기준으로 주위를 판단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택한다. 아무리 오래 같이 살았던 사람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버리고 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어떤 상황도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은 아버지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끝까지 아버지의 옆에 남아있었던 딸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소설 속의 주인공도 한 때는 아버지를 잠시 떠났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오고 아버지의 마지막까지 옆에서 그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그녀 외에 다른 가족은 아버지를 자신들과 맞지 않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외면하고 버렸다.


  “아빠가 돌아올 때쯤에는 마음이 좀 정리가 됐어요. 이젠 아빠와도 선을 긋도록 하자. 아무리 아빠가 부탁을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나도 내 생활이 있다, 이렇게 결심을 했어요. 그런데 아빠가 술이 잔뜩 취해서 나타난 거예요. 문을 열자마자 거실 바닥에 몸을 던지듯이 쓰러지시더라고요. 아빠는 그렇게까지 만취하는 일이 드문 사람이에요. 좀 이상했죠. 결심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어요.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빠가 울어요. 딸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사랑의 크기는 그 사람의 어디까지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아닐까 싶다. 상대방보다 나 자신을 더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그 사람의 좋지 않은 면이 보인다면 이미 사랑의 마음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떠한 상황이더라도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의 것들이 잊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으려 마음먹었어도 다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사랑의 끈이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엄마나 현정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어둠이 없어요. 밝고 따뜻해요. 특히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논리적이고 명쾌하죠. 외국어 같았어요. 왜 외국어로 말을 하면 좀더 이성적이 된다잖아요. 아빠하고는 달라요.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그 사람의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커다란 사랑이 아니기에, 자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기에 그렇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경우에는 이기적인 사랑일 뿐이다. 


  어떤 상황이더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인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네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 미친놈도 언젠가 또다른 미친놈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중심이 된다. 주위의 모든 것을 자기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그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기준은 오직 자신에 해당할 뿐이다. 그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며, 무언가를 판단할 절대적 기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과한 채 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아쉽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그렇게 판단한다.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아버지는 이제 떠났다. 운명처럼 그동안 삶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다 떠났지만, 딸은 아버지 곁을 끝까지 지켰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그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랑은 그 대상이 어떠한 사람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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