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遠視)

by 지나온 시간들

<원시(遠視)>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헤어짐은 단지 멀리 떨어져 있음에 다름 아니다. 멀리 있음에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의 현존이 죽음으로 인해 더 존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이 있기에 살아감이 아름답다.


헤어짐은 어쩌면 필연일지 모른다. 그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유는 의미 없다. 단지 그것이 자연의 흐름과 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월은 우리를 초연하게 만든다. 익숙하지 않은 것도 익숙하게 만든다. 바라지 않고 원하지 않았던 것도 이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픔의 깊이가, 고통의 신음이,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회한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 내가 볼 수 없었던 것이 보이고, 내가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을 인식하게 되고,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살아온 삶의 연륜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은 엄청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왔다가 다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는 것뿐이다. 나의 존재의 고향은 원래 없음이었고, 다시 그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다.


헤어짐도 이제 멀리 있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이제 아프지 않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면 될 뿐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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