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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r 20. 2022

이해를 넘어서

마음 깊이 사랑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나 자신이 먼저이기에

이해하고자 할 뿐입니다  

    

이해는 한계를 넘지 못하니

그 자리에 머무를 뿐입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할 텐데 이를 위해서는 그에 대한 관심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러한 것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 이해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오직 나의 관점에서, 나의 프레임으로만 주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그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관점에서 이해가 안 되면 우리는 그저 더 이상의 생각 없이 그를 나에게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꼭 이해를 해야만 그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 알더라도 나의 인식의 한계로 말미암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터인데, 이런 경우에는 그를 외면하고 배척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해의 차원도 넘어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그의 인간적 성숙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척도이기는 하지만,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 한계도 넘어서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별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러한 일을 지금 이 시간에 겪게 된다면 다시 이해의 차원에서 우리는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게 된다. 


  우리가 자아의 틀에 갇혀 있는 한, 더 많은 것을 포용하거나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한 그 한계는 더욱 높아질지도 모른다. 과감히 이러한 한계를 깨고 넘어서려고 노력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를 주장하고 관철시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될 수는 없을 듯싶다. 나보다 그를 사랑하기에 나 스스로 그 장애물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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