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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pr 07. 2022

사랑을 믿다

사랑은 대상이 존재한다. 사랑 그 자체를 믿을 수는 있지만, 그 대상을 믿을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다. 나의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나에 대한 사랑이 변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는 사랑과 믿음 두 가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소설이다. 사랑은 분명히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절망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사랑을 잃는 것이 모든 것을 잃는 것처럼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다. 온 인류가 그런 일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손쉽게 극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른 채 늙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드물게는,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죽을 때까지 그런 경험만 반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삶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나도 삼 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는 정도이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비밀도 아니다. 난 사랑을 믿은 적도 있고 믿은 만큼 당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사랑을 믿은 적이 있다는 고백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사랑은 변한다. 사람 또한 변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사랑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있고, 자신의 감정이 변한 것으로 인해 그 사람과 더 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헛된 꿈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이 과거사가 되었다. 나는 기차간 모양의 술집 분위기를 내는 이 단골 술집에 혼자 앉아, 맞아 그때 그런 얘길 했었지라든가 왜 그랬을까 그녀는, 하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름, 그녀가 했던 얘기들, 그녀의 피식 웃던 표정, 그녀의 단정한 인중선과 윗입술을 떠올린다. 그녀는 오지 않고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위로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 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 그 시린 진리를 찬물처럼 받아들이면 됐다.”


  사랑을 잃는다 해도 위로받을 필요는 없다. 원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이 한낱 개인의 감정에 불과하다면 믿음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믿음이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그 대상이 변하더라도, 그 존재가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고, 끝까지 변하지 않아야 진정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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