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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May 22. 2022

아베의 가족

전상국의 <아베의 가족>은 한국 전쟁이 살아남은 자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남겨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가슴 아픈 소설이다.


  “나는 밤낮없이 그들을 칼로 찔러 죽이는 환상으로 치를 떨었다. 그들의 검고 끈적끈적한 살갗 그 깊숙한 데서 콸콸 쏟아지는 피를 두 손으로 받아 이웃 사람들 눈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으로 치미는 증오와 복수심 그것 때문이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누구에 대한 원한이 이토록 사무치는 것일까? 밤낮없이 칼로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의 근원은 무엇일 걸까?


  “뒤꼍 장독대를 보살피고 있는데 안쪽에서 뭔가 심상찮은 기척이 났다. 난생처음 보는 외국 병정들 대여섯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시어머님이 그들에게 잡혀 시커먼 손아귀에 입을 막힌 채 대청으로 끌어 올려지고 있었다. 어느 한순간 시어머님의 눈길이 내 눈과 부딪쳤다. 애원과 절망과 공포의. 그런 모든 것을 내쏘는 눈빛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온몸의 힘이 싹 빠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시커먼 짐승 셋이 다가오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안방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힘을 뻗쳐 발버둥을 쳤다. 나는 무심결에 내 배를 그러쥐며 애원하는 손짓도 해보았다.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넓적한 손아귀가 내 입을 막았다. 나는 그 짐승들의 냄새를 맡았다. 그것은 노린내였다. 짐승들의 흰 이빨이 보였다. 그들은 낄낄낄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한국 전쟁 중 미군에 의해 겁탈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당한다. 시아버지는 인민군에 잡혀있었고, 며느리의 남편은 인민군에 징집되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며느리는 임신 중이었다. 그 일을 당한 후 충격으로 며느리는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임신 8개월 만에 낳고 말았다. 그 아이가 바로 아베였다. 죽을 줄 알았던 아이가 살아남기는 했지만, 덜 발달된 뇌로 인해 정신박약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알아낸 비밀은 아베가 적어도 우리 아버지의 피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머니의 먼저 남편의 씨가 아베였던 것이다. 가봉자.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면 아베를 한국에 버리고 온 우리들의 죄의식이 다소 가벼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반대였다. 정희와 나는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진정 아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베를 키우며 매일 남편만을 기다렸던 그 며느리는 결국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해 시어머니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한국전에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운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아베 어머니는 새로운 남편 사이에 4명의 자녀를 출산하고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5남매를 키워냈다. 한국전에서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그녀의 새 남편은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고, 항상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기만을 희망한다. 


  “그러한 인간 아베를 한국에 버리고 왔다 해서 우리 식구들이 죄의식으로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못 박아 생각해 왔다. 아무리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이라고 해도 아베 같은 동물로 해서 어머니가 그처럼 괴로워하고 정말 백치처럼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 양공주였던 남편의 여동생 덕분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녀는 백인 한 명, 흑인 두 명의 남편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결혼한 흑인 미군 덕으로 미 시민권자를 얻은 후 이혼했다. 미국 시민권자였던 그녀의 도움으로 여권을 포함한 모든 수속을 마친 후 미국 대사관에서 면접을 받는다. 하지만 정신박약아는 이민이 불가하다는 사실을 비자를 받는 날 알게 된다. 


  “12시가 넘어 산동네 그 아래의 소음도 잠들어 버린 시간이었다. 나는 몰래 훔치듯 아베를 생각했다. 아베의 그 헤벌린 입과 거기서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침과 그 냄새와. 나는 되도록 아베의 더러운 것만 골라 생각했다. 아베는 사람두 아니야. 그래, 차라리 아베보다 살무사가 더 기르기 좋을 거야. 아베 때문에 우리 식구들은 입때껏 고통을 당했어. 아베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제적을 맞은 거야. 아베 때문에, 아베 때문에 우린 내일 떠날 수 없을지도 몰라. 나는 아베에 대한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잠이 들었다.”


  어머니는 다른 가족을 위해 아베를 홀로 한국에 두고 떠나게 된다.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베를 남겨 둔 채 이민을 갔지만, 그 후로 어머니는 미국에서 완전히 혼이 나간 백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베를 어디에다 맡겨놓고 다른 가족과 함께 미국을 갔던 것일까? 그러한 선택밖에 다른 여지는 없었던 것일까?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베는 도대체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 목숨이라고 유지한 채 살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전쟁이라는 시대의 흐름은 그 어떤 개인의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삶이라는 무거운 운명 또한 우리들의 삶을 그렇게 짓누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무게 앞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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