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

by 지나온 시간들

우주의 나이는 137억 년, 인간은 고작 몇십 년을 살다가 갈 뿐이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것을 겪으며, 아파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하며, 가끔은 기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끝은 오게 마련이다. 100% 예외가 없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와 잠시 머무르다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갈 뿐이다. 생은 어쩌면 잠시 정차했다 가는 간이역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인식 없이는 진정한 삶도 알 수가 없다.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할수록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인은 풍장을 원했다. 매장이나 화장이 아닌 풍장인 이유가 무엇일까? 삶이나 죽음이나 모두 자연의 일부이기에 인위적인 장례식도 거부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나의 몸뚱이가 바람에 말라버려 다 날아갈 때까지 내버려 달라고 하는 이유는 아직도 이생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죽어서도 햇빛 속에 누워 바람을 맞이하고 싶은 것은 떠나기 싫은 아쉬움일까?


죽음은 가식도 필요 없고, 어떠한 상징도 아닌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삶이 고통이었다면 그로부터의 해방임에는 틀림이 없다. 삶이 나의 욕망으로 가득 찼던 것이라면 그것으로부터 나는 이제 바람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삶이 나에게 커다란 질곡이었다면 이제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시인이 풍장을 원했던 것은 살아있는 동안 자유롭지 못했기에 죽어서라도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것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삶은 얼마나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일까? 죽음에 이르러야 그 구속에서 자유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풍장>

황동규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도 해탈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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