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
근무 말년, 계급장 떼고 윗분들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대화를 하다가
가장 크게 맞부딪히는 지점이
“브랜드를 왜 하나?”라는 근본적인 포인트였다.
사실은 꼭 이 회사, 이 CEO뿐 아니라,
대부분의 회사, 대부분의 CEO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일 듯하다.
- 브랜딩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 “돈 버는 마케팅”으로 회사를 기반에 올려놓은 후, 브랜딩은 나중에 해도 된다
- 브랜딩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한 마디로, [ 先마케팅 後브랜딩 ] 구조다.
전직 브랜드 컨설턴트였던 나의 변론
아닙니다. 브랜드는 회사의 근본이고 원칙 같은 겁니다.
초기에는 주로 설립자의 철학과 회사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대소비자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의 기본 원칙 정도로 세워 놓으면
내외부적으로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분명한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게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겁니다.
현재 설립 후 2년 정도 경과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초기이고
그 시간 동안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한 부분도 있으니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얼기설기, 띄엄띄엄한 브랜딩 요소들을 잘 모으고 정리해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삼으면
결국은 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차별적 경쟁 포인트도 되고,
혹시 차후에 매각을 하더라도
인지도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파워는 심지어 돈으로 환산되는 자산의 가치도 있습니다.
지금 광고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어려울 때 우리 브랜드 중심을 확고히 잡고,
작더라도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활동으로 핵심 팬층의 로열티를 강화하여,
이후 경기가 회복되었을 때 공격적으로 시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등등.
할 수 있는 말은 다 한 것 같다.
그것도 50장짜리 아름다운 파워포인트 문서로 만들어서 –
그게 설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그랬더니 돌아온 답변
당장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는데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나.
벤처 업계가 얼어붙어 투자를 못 받으니 회사 적자가 쌓여간다.
나중까지 회사가 살아남는다는 보장 있냐.
매각이고 나발이고 그전에 회사 문 닫을 수 있다.
당장 홈페이지 하나 교체하려 해도 몇 백씩 들어간다.
그 돈이면 쿠폰을 뿌려서 매출 몇 백 올리는 게 낫다.
인력 투입도 결국 돈이다.
브랜딩 한답시고 애들 일 시킬 바에야 그 시간에 짭짤한 제휴 마케팅 개발하러 다니는 게 낫다
큰 회사에서 큰 브랜드만 하다 보니 당신이 현실 감각이 없는 거다.
지금은 안 된다.
예산도 쓸 수 없거니와,
있는 직원들도 당장 돈 되는 일에만 백 프로 투여해라.
힘이 쭉 빠졌다
그래요?
제가 큰 회사에서 큰 브랜드 많이 했던 거 다 알고 데려오셨잖아요.
브랜드가 지금은 미천하지만 크게 키워 달라고 해서 온 거잖아요.
뭐 이렇게 말은 안 했지만,
어차피 서로 눈치는 빤했다.
피차 “새 날아가는 소리”만 한 거다.
새 날아가는 소리 _ 업계 전문 용어로, ‘현실감 없는 공허한 이야기’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