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챗GPT는 모르는 마음: 여행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경계인 이론"

by 설부인

지난 금요일 저녁, 종각역 오티움에서 하는 정혜신 쌤의 <"손으로 읽는" 당신이 옳다> 북토크 방문.


2018년에 나온 정혜신 선생님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은,

다정한 심리학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대문자 T인 나도 꽤나 감명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렀지만, 계속 수요가 있던 이 책이 이번에 필사 에디션으로 다시 나왔다.


처음 뵌 정혜신 쌤은 마치 MC 양희은처럼

아주 노련하게 토크를 주도하는 스킬을 갖고 계셨다.

진정성 있는 정혜신 쌤의 북토크


그리고, 2시간 정도 진행된 북토크의 요지는,,

"몸의 병이 있는 사람은 의사를 찾지만,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의사를 찾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내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왔다"


"요즈음 심리 상담을 챗지피티와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가 사람과 함께 하는 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남편의 구타로 이혼한 경단녀 여성이

무기력함의 돌파구로 "남미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자,

챗지피티는 지금 그 사람의 마음에 대해 '위험한 상태'로 진단하며

남미여행 자체를 극구 말리는 내용이 올라왔단다.


일견 보기에 전문가스럽기도 하고, 무난한 상담 같기도 한데, 정쌤은 비판한다.

결국 이것이 가장 금해야 하는 충고-조언-평가-판단(충조평판)이라고.


그럼, 정쌤은 어떻게 상담했는지?

그냥 "왜?"라는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쌤)"왜 남미인지?"

(내담자)"가장 먼 곳이라"

(쌤)"그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내담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면 지금 이 후진 모습이 아니라 괜찮았던

나의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결국, "특정 장소"가 아니라 "마음 상태"가 중요한 것이었다는 의미.



그냥, "남미는 위험해"가 아니라,

"너의 남미는 어떤 의미이니?"라고 묻고 귀기울여 주라는 이야기.


그 마음을 들어주고 긍정해 주자, 해당 여성은 굳이 위험한 남미가 아니라,

대만의 후미진 곳으로 안전하게 여행을 다녀온 후

무기력을 극복하고 취업도 하며 달라진 모습을 찾게 되었다고.


너무 좋은 말씀이었고, 인사이트가 담긴 강연이었다.

그리고, 마침 여행 이야기 나와서 더 반갑기도 했다.

이 이야기 속 여행의 역할은 무엇일까.



경계인 이론(Liminality)으로 본 이혼과 여행


이혼 후 자괴감에 빠진 한 여성이

한국에서 가장 먼 남미로 여행을 떠나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이는 심리학적으로 '경계인 이론(Liminality)'으로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경계인 이론의 가장 핵심적인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혼은 단순히 결혼 관계의 끝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적 지위(유부녀)와 역할(아내)을 상실하는

매우 강력한 '경계인 상태(Liminal State)'를 만든다.

이혼한 여성은 더 이상 기존의 사회적 역할에 속하지 못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전까지 정해지지 않은 '경계'에 머물게 된다.

이때 찾아오는 자괴감은 바로 이 불확실한 경계인 상태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남미로 떠나는 여행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먼저, 한국에서 가장 먼 남미로 떠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일상과 가장 멀리 떨어진 '극한의 경계 공간'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이 낯선 환경은 이혼 후의 심리적 혼란 상태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기존의 사회적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장치가 된다.


또한 경계인 이론에서 '의례(Ritutal)'는 기존의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전환의 과정이다. 이혼 후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정체성을 향한 자발적인 '개인 의례'라고 할 수 있으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또한 여행 중 겪는 낯선 경험(언어, 문화, 길 찾기 등)은 그녀가 기존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마주하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기 효능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북토크 가서 좋은 말씀도 듣고,

여행 관련된 이야기꺼리도 하나 찾게 되어

보람 있는 날이었다. : )


#정혜신작가 #당신이옳다 #경계인이론 #Liminality_theory #여행과경계인

keyword
이전 07화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남의 삶으로 나를 관찰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