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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남의 삶으로 나를 관찰하는 거야

에어비앤비와 자기 관찰이론

by 설부인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의 유명한 슬로건이다. 처음 에어비앤비가 등장했을 때 나는 이 슬로건에 완전히 매료됐다. 세계 어느 곳이든 그랬겠지만 당시 한국에서 여행할 때 숙소의 대안은 호텔, 리조트, 펜션뿐이었다. 호텔은 깔끔하지만 어딜 가나 비슷했고, 리조트나 펜션 역시 전형적인 여행지 숙소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그 지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초창기에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에 묵어보려 애를 썼다.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의 삶 속에 잠시 들어가 그들의 일상을 체험하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가장 인상적인 곳은 춘천의 다운타운 속 거짓말처럼 조용한 뒷골목에 자리 잡은 방 한 칸짜리 공간이었다.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채산성은 나오지 않아 재건축은 꿈도 못 꾸고 뭉개고 있음이 역력한 그런 곳. 하지만, 낡고 삐걱거리는 외관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움을 해치고 나오는 집주인의 맑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칙칙한 공간이었지만 깔끔하고 밝은 센스로 고른 가구나 주방용품들이 아주 보기 좋았다. 아기자기한 욕실 용품까지, 낯선 젊은이의 방을 슬쩍 엿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남의 집에서 나를 돌아보다


그 공간을 둘러보며 나는 문득 반성하게 됐다. 멀쩡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새로 나온 생활 용품이나 소품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옛날 취향 그대로 덤덤하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내가 사는 일상의 환경에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사실 예전에는 친구나 남의 집에 가는 일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일 자체가 별로 많지 않다 보니 자극을 받을 일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그렇다. 초창기 에어비앤비는 단순히 '체험'을 넘어 '나를 돌아보는' 곳이었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이 아닌 현지인들의 일상 반경을 걸으며 그들이 사는 곳에서 먹고 자면서,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소박한 식사를 하는 순간, 나는 물리적으로 낯선 곳에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나와 내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마치 내 삶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행이 주는 심리적 깨달음: 자기 관찰과 관점 전환


우리는 일상에 갇혀 있을 때, 자신과 자신의 문제에 너무 가깝게 붙어있어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를 물리적으로 분리시켜 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기 관찰(Self-observation)과 관점 전환(Perspective Taking)이라는 심리적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자기 관찰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낯선 환경에 놓이면서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생각, 감정,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바쁘게 살려고 애쓰는가?', '나는 내 주변을 왜 이렇게 무심하게 방치했는가?' 같은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관점 전환은 나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이다. 춘천 에어비앤비 주인의 밝은 취향을 보며 '내 취향과 감각에도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겠구나'라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국, 여행은 나를 돌아보는 여정이다


물론 요즘의 에어비앤비는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꾸며져 어디 가나 비슷해진 공간이 대부분이다. 초창기 에어비앤비의 순수했던 그 경험들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플랫폼이 변했다 해도, 여행의 본질적인 힘은 여전하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심리적 거리 두기를 선물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여행의 가장 큰 효용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떠나자. 남의 삶을 보며, 결국에는 나 자신을 관찰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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