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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Dec 20. 2023

임신일기 08. 임신중기-2 : 성별



딸vs아들? 아들vs딸?



자녀의 성별선호도가 예전엔 남아선호사상이 우세했다면 요즘은 딸을 갖기를 원하는 부모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말이 아니지만 옛말에 맏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얘기 때문인지, 아들은 키워봤자 결혼하면 쓸모없다는 얘기등 여러가지 이유로 딸을 선호하는 부부들이 많은듯 보인다. 우리 부부도 당연히 성별 선호도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남편은 딸을 원했고 나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었다. 나와달리 주변에서는 왠지 나는 딸을 낳을 것 같다는 얘기를 꽤 듣기도 했다. 아들 키우는 나는 잘 상상이 안된다는게 이유였는데 아마 체력도 약하고, 지병도 있기 때문에 주변에선 그래도 좀 얌전한편인 딸을 키우길 바래서 그러지 않았나 싶다. 나를 위해서 그런 생각까지 해주다니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딸을 키우면 딸을 키우는대로 걱정이, 아들을 키우면 아들을 키우는대로 걱정이 될 것 같았다. 딸을 낳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아들을 낳으면 내가 전혀 모르는 생명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남자라는 부분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기 자체를 잘 키울지도 의문인데 성별에 대해 생각하자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편으로는 성별을 알 수 있는 16주가 다가올수록 딱풀이는 딸일까 아들일까 궁금증도 커지면서 설렜다.


14주에 피가 비친 것에 대한 확인을 하러 병원에 갔다가 아기 초음파도 보고 오게 되었는데 어라..? 내 눈이 심각한 매직아이인건지, 뭔가가(?) 보였다. 탯줄인가 싶었지만 그러기엔 꼬여 올라간 모양이 보이지 않았다. 난 궁금해서 의사선생님께 매직아이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음 진료때 성별을 알게 될테니 물어보지 말자 싶어서 진료를 마친 후 집에 왔다.


남편이 퇴근한 후 초음파를 보여주면서 이거 보이는거 아닐까? 라고 말했는데 남편은 모르겠다며 우린 딸을 낳을거야! 라고 했다. 딸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이상 별말은 하지 않았는데 신경쓰였는지 주문을 걸듯 산모수첩 맨 앞장 출생기록에 아기이름/성별 란에 ‘여’ 라고 써두기까지 했다. 2주 동안 나는 남편을 놀리면서 남편은 내게 아들이 아닐거라 부정하면서 지냈다.


대망의 16주가 된 날, 양수 양도 아기 발육도 주수에 맞게 잘 크는 중이고 내 몸도 크게 문제없이 잘 지내는 편이어서 다행이다 얘기를 하며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기 보이죠? 아들이네요.”


진료가 끝나고 남편에게 소식을 알릴겸 연락을 해서 아들이라고 말하니 고장난 로봇처럼 잠깐 멍해졌는지 말이 없다가  “아직 몰라 20주가 정확한거라고 했잖아.” 라고 했다. 어느 책에선가 교과서적으로 20주에 성별이 확실해진다는 문장을 보고 남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엽기도하고 서운하기도 하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는데 갑자기 배가 뽀글뽀글했다. 음? 가스가 찼나 생각했는데 그런 신호(?)가 전혀 없었다. 한 번 그러고 말았기에 신경쓰지 않고 집안일을 하다가 뽀글을 잊을즈음 다시 아랫배에서 뽀글하는 느낌이 났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이건 태동이다! 너무 신기하고 신비한 기분이라 오… 하며 멈춰있는데 꿀렁하는 느낌도 났다. 딱풀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특하고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남편에게 급히 분노가 일었다. 아들이건 딸이건 애기가 이렇게 열심히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데 딸이 아니라고 아쉬워해?! 이렇게 잘 움직이는 아가인데? 아들이라고 지금 무시하는건가? (그런 말 한 적 없음) 별 오만 주접을 떨다가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신발도 벗기전에 말했다. “아들이야 아들! 나 태동도 있어! 더이상 딸 아니라고 아쉬워하면 딱풀이 안 보여준다! 앞으로 출산준비를 할 것이다! 아들 용품 위주로!” 남편은 조그마하게 속삭였다. “그래두 20주…가…”

시무룩하게 속삭이는 모습을 보자니 웃기기도 귀엽기도해서 웃음이 났다.

말은 저렇게해도 진짜 태어나서 막상 아기를 보면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할거면서 그래도 딸바보가 되고 싶었구나 생각하니 나야 성별선호도가 없었지만 딸을 기대한 남편입장에서는 아쉬운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이해가 됐다. 반면 정말 성별은 아무 상관없던 나는 앞으로 살 것, 준비할 것을 아들 위주로 챙긴다고 생각하니 명쾌해져서 이제 출산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성별선호도는 부모의 기대일 뿐 아이의 사랑스러움이나 소중함과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딱풀이가 딸이건 아들이건 딱풀이는 내 새끼고 나는 딱풀이 엄마다. 성별선호도가 있을 순 있지만 아이의 성별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랑받을 자격을 얻거나 소중하게 대할지에 대한 여부를 가를 순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내 새끼는 귀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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