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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Dec 27. 2023

임신일기 09. 임신중기-3 : 태동과 출산준비


엄마만이 느끼는 경이, 태동



뽀글뽀글 이후로 딱풀이는 활발하게 움직였다. 뭔가가 배를 쑥 훑고 가는 느낌이 들기도하고 한쪽에서 콕콕 거리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는지 조그만 무언가로 배를 쭉 밀기도하고, 신나서 발차기를 하는지 명치에 가격을 하기도 했다. 명치 부분을 가격 당할 땐 귀여운 게 아니고 너무 아파서 억 소리가 절로 나기도!

배가 나올수록 뽈록뽈록 보이기도 했는데 임신하고 가장 신비하고 경이로운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가령 그저 길 가다가 오토바이가 너무 가깝게 지나갈 때에도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거나 보호했는데 그 때도 아기가 내 뱃속에 있는지 태동만큼 적나라하게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마치 태동은 딱풀이가 나 여기있다 엄마! 하는 표현인 동시에 엄마도 알고 있다 요녀석! 하고 소통하는 어떤 언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귀엽고 기억에 남는 태동이라면 같이 반응해주는 태동이었다. 이를테면 딱풀이가 발인지 손인지 쭉 밀 때 그 쪽을 콕콕 두드리면 놀란 것처럼 쭉 나온 것이 잽싸게 들어갔다. 그러고나면 처음처럼 쭉 펴는 게 아니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다른 곳을 쭈욱 밀었다. 그러면 난 또 그곳을 톡톡 두드렸다. 놀란 것처럼 다시 잽싸게 움직임이 들어가는 걸 보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육성으로 딱풀아 엄마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태동이 늘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위에 쓴 것처럼 명치를 가격하면 매우 아팠는데 나중에는 명치가 아니라 세게 쿵쿵 치면 걸어가다가도 아야 하는 소리와 함께 배를 감싸고 걸음을 멈추게 되고 도통 자는 시간이 엄마랑 맞지 않는지 딱풀이는 내가 잠들 것 같은 시간에 열심히 놀았다.


27주에는 입체초음파로 아기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검사하는 날 하도 얼굴을 팔로 가리고 숨어다니느라 바쁜 딱풀이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어려운 걸 해내셨고! 나는 초음파 사진을 보았고! 보자마자 내가 아는 얼굴이고! 그것은 바로! 시어머니 얼굴이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아주 똑 닮았다. 고로 날 닮기보다 남편을, 시어머니를 더 닮은 것이었다. 다행스러우면서도(?) 뭔가 서운했다. 실제로 의사선생님께는 내가 품고 내가 낳을건데 나를 닮지 않다니! 하고 개탄스러워했더니 선생님이 빵터져서 얼굴이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냐고 확인까지 시켜주었다.

글을 쓰는 지금 봐도 시어머니=남편=입체초음파 딱풀이 공식이 성립한다. 나를 안 닮아서 서운한 건 잠시고, 정말 남편과 똑같이 생겨서 이미 딱풀이 얼굴을 아는 기분마저 들었다. 유전자는 정말 신비하다.

 


임신후기가 되어 몸이 점점 무거워서 힘들어지기전에 출산준비도 시작했다. 첫째는 늦게 나온다는 말도 많긴했지만 세탁할 것들, 정리해서 넣어둘 것들, 세척해 둘 것들, 중고로 사도 괜찮은 것들 구분하기 등 할 일이 꽤 돼서  이 시기에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아기용으로 필요한 것들을 전부 다 적어보았더니, 목록이 왜 이렇게 많은가. 살 것이 이렇게 많았나. 정리해서 어디에 둬야하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예산도 잡아보고 어떤 브랜드 어떤 물품이 좋은지 검색도 해보던 중 주변에 아이를 먼저 낳은 선배님들께서 친히 물려줄 것이 있다며 받으러 오라는 황송한 연락을 받기도 했다. 감사히 물려받은 물건들 중에는 내가 사려고 했던 것들이 꽤 있어서 비용도 절감하고 준비도 예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사진의 목록은 일부이다.


출산준비에는 아기용품, 육아공부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나, 내가 출산하고 필요한 물건들도 준비를 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출산에 대해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고, (이게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건지도 의문이다.) 수술을 할지, 하지 않을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막연하게 이건 이게 장점이고 이건 저게 장점이구나 하는 수준으로만 얕게 알아봐둔 상태였다. 그래서 출산준비 목록은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도 있지만 막상 출산일에 어떻게 낳을지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수술할 경우와 아닐 경우 두가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작성했다.


딱풀이를 만나는 날을 어렴풋이 상상만했지 출산할 생각을 진지하게 하자니, 지금 곧 애를 낳아야하는 것처럼 겁이 났다. 왜냐하면 27주 입체초음파를 마지막으로 나의 임신중기는 끝이 났고, 4주 후부터 보게 될 진료는 임신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출산예정일은 3개월정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3개월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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