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0 아빠와 딸의 '지중해 한 달 배낭여행' 그 시작
아빠와 딸의 지중해 한 달 배낭여행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3개국 지중해를 여행하자고 했지.
아빠는 은퇴하기 전부터 버킷리스트로 지중해 나라를 여행하는 꿈이 있었어.
왜 지중해야? 물어봤을 때, 올리브, 푸른 바다, 오렌지를 보고 싶다고 했어.
동유럽은 엄마, 아빠와 2주간 자유여행으로 간 적이 있었어.
이제는 따뜻하고 정열의 나라 남유럽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출발!
그러고는 Woochelee(아빠 이름을 영어로 줄이면 우처리가 되지)의 지중해 사진전을 열고 싶다고 했지.
어쩜 여행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난 만으로 30세, 아빠는 내가 살아온 인생의 딱 두 배를 더 산 만 60세 이더라고. 아빠가 내 나이 때에 나를 낳았는데 이렇게 둘이 여행을 오다니 3060의 여행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어.
아빠와 나는 정말 배낭 한 개씩만 들고 떠났어.
딱히 배낭만 메고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둘이 통한 거야. 아빠가 캐리어를 포기하고 배낭을 메고 온 건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고 여행 내내 칭찬했지.
몸도 마음도 가볍게. 정해진 루트 없이 도시만 정해서 숙소와 비행기만 예약하고 떠돌아다녔지.
정말 화장실 갈 때 빼고 24시간 아빠와 붙어있던 적이 있었나 싶어.
상훈의 상록수 소설을 읽고, 농촌 계몽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하에
농협에서 39년간 일하고 은퇴한 아빠랑 비슷한 점이 참 많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살기.
편견 없이 도전해 보고, 새로운 친구 만들기.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세상 바라보기.
알고 있었지만 하루하루 함께할수록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어.
첫 여행은 바르셀로나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10년 만에 와보니
더 멋지고 찬란한 나라 스페인.
남동생과 10년 전 첫 배낭여행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강렬한 햇살, 연둣빛의 플라타너스, 오렌지로 기억될 바르셀로나.
“와 진짜 사람들이 다 예쁘고 멋있어. 부럽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찬사에 아빠는 사뭇 놀라 했어.
“너가 부럽다고 말하는 거 처음 듣네. 평소에는 그런 말 잘 안 하더니. 정말 다들 멋지긴 하네.”
아빠 덕에 알게 된 나에 대한 것들.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오래 기억하는 사람. 아빠와 엄마.
엄마는 결혼 후 33년 만에 온전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갖고 있어. 일타쌍피 성공. 두 분 다 각자의 방법으로 한 달간의 멋진 휴가를 보내는 중.
아빠가 멋진 한국인(아시아인)이 될 수 있게 숨 쉬듯이 가르쳐 주고 있지. 효녀인지라 예쁘고 착하게 말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 한 주에 한 개씩 레슨을 주고 있어.
1주 차 레슨. 큰 소리로 이름 부르면서 외치지 않기. 사람 많은 곳에서 “유리야!”라고 외치던 아빠. 주위를 둘러보면 소리 지르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잔잔한 유럽.
무언가를 못하게 한다면 언제나 대안이 필요한 법: 아빠의 주특기인 휘파람을 활용하기로 약속했어. 아무도 휘파람 소리를 내지 않지. 고로 나는 아빠의 새소리에 자동반사하게 되었어.
"휘익" "휘이익"
어디서든 아빠는 날 쉽게 부르고 나는 아빠가 사진을 맘껏 찍을 동안 멍 때리며 기다리다가 휘파람 소리가 나는 곳으로 휘적휘적 걸어갔어.
나중에는 혼잡한 지하철에서도 사람 많은 광장에서도 어디서든 아빠는 나를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어.
이전 여행에는 무턱대고 "이거 안 했으면 좋겠고, 유럽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라고 했었어.
이번 여행은 좀 나아져서 서로에게 유연한 규칙을 하나하나씩 쌓아가니 싸울 일이 많지 않더라고.
짐은 적게 몸은 가볍게 다니되, 머리는 항상 깨어있어서 어떤 것도 넣을 수 있게 여행하기.
이번 아빠와 딸 여행의 핵심이 아니었나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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