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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14.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10/100

누나와 동생

누나란 어쩐지 단어부터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집안에서 몽글몽글함을 담당할 것 같은 누나.

동생을 살뜰히 챙길 것 같은 누나.

엄마가 집을 비울 때 엄마를 대신해서 집안일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누나.

나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누나가 되었고, 평생 누나로 살지 않은 날보다 누나로 산 날이 더 많지만 누나가 아직도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얼마나 누나답지 않았는지는 할머니를 통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동생이 울면 할머니에게 쪼르르 달려가 냄새나고 시끄러우니 쟤를 다른 집에 갖다주자고 했던 일화나, 할머니 몰래 동생 발을 질질 끌고 버리러 나가겠다고 한 이야기는 정말이지 나 자신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한다.


할머니는 나를 많이 예뻐하면서도 집의 장남인 동생은 그 대우가 조금 달랐다. 동생이 태어나고 집안이 편안해졌다는 할머니의 말은 다시 생각하면 본인의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들린다. 아마 동생이 아들이 아니었다면 우리 엄마는 다음 아이를 준비했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에는 흔한 딸딸 아들의 집이 우리 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세상에 반항하는 나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발생하지도 않은 차별을 미리 방지하고자 나는 동생에게 참으로 표독스러운 누나로 살았다. 참 못났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로 자라면서, 동생과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10대의 모든 아이가 그렇듯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은 손가락 한 개도 움직이기 싫어했다. 종일 집에서 싱크대를 가득히 채워 놓으면 퇴근하고 오는 엄마는 종종 잔소리했다. 누나이기에 잔소리 하나를 더 들어야 했던 그때의 나는 그 잔소리가 그렇게 억울했다. 왜 나한테만 뭐라고 더 그러는 거야?. 그때부터일까, 집에서 동생과 같이 라면을 먹어도 각자의 냄비 각자의 그릇에 따로 먹고 나는 내 그릇만 싹 설거지를 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잔소리하면 나는 내 것 다 해놨다고 해야지. 내가 엄마였다면 등짝 스매싱을 후려칠 딸이 바로 나였다.


동생은 그런 표독스럽고 못된 누나 밑에서 참으로 착하게 컸다. 동생을 아는 모든 사람은 다 안다. 내 동생이 착해도 너무 착하다는 것을. 우리 집의 문제아는 나였다. 아들 키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엄마를 위해 내가 다른 집 딸들이 주는 고통의 3배는 더 안겨드렸다. 아들 키우는 맛을 못 느끼실까 봐 이런 건 살뜰히 챙겨주는 집안의 문제아가 바로 나였다.


동생도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동생은 여전히 착하고 속이 깊다. 엄마·아빠에게 더 살갑게 대하는 것도 나보다는 동생이 잘한다. 표독스러운 누나 밑에서 자라면서 쌓인 내공인가 싶어 조금은 미안하다. 사실 누나로서 동생 성격이 독하고, 이기적인 게 속없이 착한 거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속없이 착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 언제나 조금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하고 부드러운 동생을 보면 참 잘 컸다 싶은 마음이다.



나 때문에 쟤가 저렇게 큰 거라며, 어렸을 때부터 혹독하게 교육해서 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누나답지 못한 누나라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제는 다시는 같은 지붕에서 살 수 없는 동생이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더더욱 그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줄었다. 뭐 말은 이렇게 해도 결국 만나면 잔소리만 했을 인간이다. 나란 누나는.


10년 전 함께 유럽 여행을 갔었다. 다시 생각하니 무슨 생각으로 나와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동생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그렇게 둘만 여행 갈 일은 절대 없을 일이기에, 그때 잘 다녀왔다 싶다가도 동생이 꼭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고 아름다운 유럽을 가서 그때의 안 좋은 추억을 잘 덮기를 기도한다.


참 못되고 징글징글한 누나다. 부끄럽네 참 허허.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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