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맛집 무용론자입니다. 아무리 맛있다는 식당의 음식, 예를 들어 어떤 유명한 스시집의 초밥이 엄청 맛있다고 한다면, 물론 맛이 있으니까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만, 보통 스시집의 초밥보다 '몇 배'나 맛있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죠.
또 맛집은 결국 사람 많은 곳에 다 있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춘천 닭갈비와 제주 흑돈이 유명하지만 서울에 있는 유명한 집에 가면 현지 못지않게 다 맛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시겠지요. 검증된 맛집은 그렇지 않은 보통 집보다 몇 배 넘게 맛있으며, 현지여야 그 맛이 나오는 집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완전히 동의합니다. 빠른 태세 전환. 오늘은 40년 가까이 유지한 맛집무용 개똥철학을 한 순간에 폐기처분한 그 음식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서부여행을 시작할 때 지났던 사우스 다코타의 엄청나게 지루한 옥수수밭을 피하기 위해, 돌아가는 길은 네브래스카주를 관통하는 80번 도로로 정했습니다. 네브래스카는 한국의 횡성 같은 곳입니다. 소고기로 유명하죠. 그리고 옥수수와 콩도요.
그렇다 보니 엄청나게 넓은 목초지와 함께 되돌아가는 길도 무한루프의 옥수수, 콩밭의 재현이 돼버렸습니다만, 그 지루한 인상이 생에 최고의 소고기 스테이크를 만나면서 한 큐에 날아가 버린 것이지요.
네브래스카 롱 혼 스테이크하우스 네브래스카는 특이한 곳입니다. 땅 넓이는 우리나라의 두 배인데 인구는 200만도 안 되죠. 그에 반해 소는 6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과연 미국 소고기의 본고장이라 할 만합니다.
네브래스카 소고기 스테이크는 맛있습니다. 저희는 딱히 맛집을 검색한 것도 아니고 그냥 프랜차이즈 '롱 혼 스테이크 하우스'에 들어갔을 뿐인데요. 이곳의 립아이(꽃등심)는, 적어도 우리나라나 뉴욕의 스테이크가 비빌 수 없는 맛이었습니다.
집이 뉴욕이다 보니 어쩌다 '뉴욕 3대 스테이크'라고 불리는 -도대체 누가 이런 3대, 5대 10대 같은 근거 모를 타이틀을 붙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울프강 스테이크와 피터 루거 스테이크를 먹어봤는데요. 어림없습니다.
일단 고기가 다릅니다. 그리고 고기가 다르죠. 고기 요리는 고기에서 9할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머지는 간만 적절하게 들어가면 끝입니다.
립아이(꽃등심)와 포터하우스(T본스테이크) 매장에서 먹을 수 있는데 착각해서 안 되는 줄 알고 포장해서 차에서 먹었습니다. 미니밴은 이럴 때 좋더라고요. 가운데 크게 보이는 게 바로 네브래스카 소고기로 구운 립아이 꽃등심 스테이크입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은 진부하지만 정확한 표현입니다. 고기가 어떻게 살살 녹는가. 씹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씹고 있었는데 어느새 사라져 있다. 삼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거죠.
얼마나 맛있게 먹었냐면, 짧은 어휘로 갖은 미사여구를 들이대봤자 모두 전달할 수 없을 것이고, 립아이가 28달러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다 먹고 또 사 먹었습니다. 보통 어른이 메인 식사를 맛있다고 앉은자리에서 또 먹지는 않잖아요? 그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아 또 생각나네요.
그리고 차를 이용해서 동물을 구경하는 사파리 '네브래스카 와일드 드라이브스루'를 둘러봤습니다.
펠리컨은 생각보다 거대하더군요 그렇게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고 아이오와주를 완전히 관통해 일리노이주까지 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시카고까지 쭉 가고 싶었지만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동네는 호텔이 비싸니까요. 1~2시간 떨어진 곳이 딱 좋습니다.
하루 건너뛰고 다시 햄튼 인 숙소인 햄튼 인 데븐포트에 체크인하니 누적 주행거리가 7000킬로미터를 넘었네요. 굉장합니다. 서울-부산 왕복을 20번 정도 한 셈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