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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바둑판 도로의 함정

오늘은 뉴욕의 도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전에는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인데 막상 차를 사고 도로에 나가보니 체감되는 게 다르더라고요. 뉴욕의 교통은 두 가지가 유명합니다. 바둑판식 도로망과 주차난이죠. 오늘 주제는 도로망입니다.


맨하탄은 섬이죠. 위아래로 20km, 옆으로는 4km 정도 되는 긴 섬입니다. 위아래로 난 길을 '애비뉴'라고 부르는데 중간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길도 있고 대충 10줄 정도 됩니다. 우리말로 옮길 때는 '번가'라고 하죠. 그래서 보통 1번가, 2번가로 바꿔 부르고 가끔 번호가 없는 '파크 애비뉴' '렉싱턴 애비뉴'같은 건 그냥 그대로 부릅니다.


맨하탄 서쪽에 곧게 뻗은 애비뉴 중에 잘 내려오다가 갑자기 꺾여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하나 있는데요. 이 길 이름이 브로드웨이입니다. 뮤지컬과 공연으로 유명한 그 '브로드웨이'입니다. 브로드웨이와 7번가가 만나는 곳이 '타임스퀘어'고요, 6번가와 만나는 곳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5번가와 만나는 곳에 플랫아이언 빌딩이 있습니다.

플랫아이언 빌딩. 시트콤 <프렌즈>로 유명해졌습니다

맨하탄이 위아래로 긴 섬이기 때문에 가로로 난 길은 엄청 많습니다. 200개를 훌쩍 넘거든요. '스트리트'라고 부릅니다. 한국말로 옮길 때는 현지인들은 '가'라고 하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번역할 때는 애비뉴와 똑같이 '번가'를 씁니다. 크리스마스 영화 <34번가의 기적> 아시죠? 현지에서는 '34가'라고 합니다. 

 

스트리트는 제법 촘촘하게 있어서 길 사이 거리가 짧습니다. 50미터 정도 되는데요. 건물 2~3동이 있는 정도라 걸어서 지나기에 큰 부담은 없습니다. 대신 신호등이 엄청 자주 나오죠. 반면 애비뉴는 200미터 정도로 굉장히 긴 데다 뉴욕 건물은 옆 건물과 벽을 딱 붙여서 짓기 때문에 애비뉴 사이에서 블록을 건너가려면 엄청 먼 거리를 돌아서 가야 합니다.

                                                   이웃한 건물이 빈틈 없이 딱 붙었습니다                        

이웃한 건물이 빈틈 없이 딱 붙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뉴 '바둑판 도로'의 겉모습인데요. 운전을 해보면 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 도로 대부분이 일방통행이거든요.


1번가는 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2번가는 내려오는 길이고요, 3번가는 다시 올라갑니다.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길이 일방통행이에요. 스트리트도 마찬가지로 1가는 왼쪽으로 가는 길, 2가는 오른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홀짝으로 외우면 되니까 이론상으로는 어려울 게 없는데요. 막상 도로에 나가보면 얘기가 다릅니다.


그럼 가볍게 문제 하나 풀어보시죠. 뉴요커가 됐다 치고.


문제. 현재 위치는 3번가 이스트 25가()입니다. 오른 위로 한 블록씩 떨어진 2번가 이스트 25가(하트)로 가려면 차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까요?

우선 눈에 띄는 24가가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군요. 하지만 3번가는 밑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3번가를 타고 올라가면 26가에서 오른쪽으로 갈 수 있겠네요. 그래서 26가를 타고 1번가까지 쭉 가면 또 밑으로 내려갈 수 없습니다. 1번가도 올라가거든요. 3번가를 타고 올라가서 26가를 타고 블록만 간 다음, 2번가를 타고 내려오면 거의 다 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5번가는 왼쪽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지만, 지나쳐가야 하는군요.


정답은 3번가를 타고 한 블록 올라가서, 26가를 타고 오른쪽으로 한 블록만 가고, 2번가를 타고 세 블록 내려와서, 23가를 타고 오른쪽으로 한 블록 가고, 1번가를 타고 두 블록 올라온 다음, 25가를 타고 왼쪽으로 한 블록 들어가면 됩니다. 디어 도착했네요! 게 도대체 뭐냐 싶지 않으신가요?

정답! 걸어서 5분이면 가는 200미터 거리지만 차로 가도 5분인 게 함정

차라리 정직하게 바둑판 모양만 있으면 시행착오 몇 번 겪고 익숙해질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게 또 막상 어디는 양방향 통행이 가능하고 또 어디는 공원이 있어서 중간에 길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도 합니다. 3번가와 5번가 사이에는 큰길이 3개나 있지만 그중에 4번가는 없습니다. 있는 건 렉싱턴, 파크, 매디슨 애비뉴죠.


뉴욕의 바둑판 도로망 어떠셨나요? 다음에는 정말 유명한 주차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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