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만이 내 세상

by 백경

우리 동네에는 만두가게가 하나 있다. 아주 얇은 만두피로 감싼 만두가 이 가게의 가장 유명한 메뉴고, 천 원을 더 주면 왕만두를 살 수 있다. 일 인분에 일반 만두는 열 개가, 왕만두는 다섯 개가 들었다. 만두 2인분에 왕만두 1인분을 시키면 얼추 네 식구 배불리 먹었다. 그게 가게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얘기고 지금은 애들이 커서 그걸로는 택도 없다. 최소 4인분을 먹어야 배가 조금 차고 5인분을 먹어야 비로소 식사를 한 기분이 든다. 비혼주의를 외치던 젊은 시절엔 내 새끼들 뱃구레가 커지는 걸로 세월을 가늠하게 될 줄은 몰랐다.


만두가게를 조금 지나 근처 시장을 끼고돌면 골목길 하나가 나온다. 깨진 보도블록 틈으로 이끼와 민들레가 자라고, 거무죽죽한 물때가 기울어진 담벼락을 타고 불길처럼 번지는 보통의 좁은 골목길. 무더운 날이면 내려앉아 있던 담뱃진이 마른 오줌과 뒤섞여 뭉개 뭉개 숨 막히는 안개를 내뿜는 그런 길이다. 몇 년 전인가 여름밤에도 골목길은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는 숨 쉬는 공기에 하루하루 텁텁한 열기가 더해갈수록 불어나는 주취자들에게 진저리를 치고 있던 참이었다. 그들은 정말 낮이고 밤이고 없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서 발견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은 집 앞이나 술집에서, 공중화장실에서, 편의점의 간이 테이블에서, 교회에서, 절에서, 당신이 어느 시간 어느 장소를 떠올리더라도 주취자는 거기에 있을 수 있었다.


신고자는 고등학생이었다. 골목길 안쪽 페인트가 다 벗겨진 녹색 철문이 달린 집에 살았다. 학생은 술 취한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집 밖에서 떨고 있었다. 때리는 걸 막다가 생긴 팔목의 상처를 처치하고 나니 달리 해 줄 일이 없었다. 몸이 너무 젊어서 아픈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슬펐다. 경찰이 학생을 보호하는 동안 우리가 집 안을 확인하기로 했다. 제 자식을 두들겨 패는 주취자라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은 해야 했다. 이런 사람들은 한눈팔고 있으면 어느 날 덜컥 죽어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집 안은 그야말로 더러웠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으로 거실이며 부엌 바닥이 빼곡했고, 거기서 썩은 땀냄새가 났다. 옷가지와 담배꽁초가 담긴 페트병을 한쪽으로 치운 자리엔 가장자리 이가 드문드문 나간 좁은 밥상이 있었다. 그 위엔 먹다 남긴 닭발인지 족발인지가 은박지로 된 포장용기에 담겨 있었고, 양은 냄비에 담긴 라면이 팅팅 불어 부풀어 오른 모양이 마치 뇌를 꺼내다 거기 놓은 것처럼 보였다. 밥상 옆엔 무슨 훈장처럼 소주병 수십 개가 가지런하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의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워 코를 골며 자는 학생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거실 한구석에 붙은 학생의 방이 보였고,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방문 근처만 가도 공기가 달랐다. 유백색의 벽지엔 학생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포스터가, 그 그룹의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포스터가 한 장 더 붙어있었고, 파스텔톤 프레임의 침대와 비슷한 색의 책상 겸 책꽂이엔 만화책과 교과서가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다. 보고 있기가 힘들어서 방문을 조금만 열어두고 닫아버렸다. 우울한 기분으로 집을 나와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자는데, 학생 아버지.

자요?

응, 어떻게 할래.

들어가야죠.

아픈 데는.

없어요, 감사합니다.

학생은 어딘지 내 눈치를 살피는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아마 세상 유일한 안식처인 그곳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뒤에 만두가게가 생겼다. 지금쯤 학생은 대학 갈 나이가 되었을 텐데, 자기 방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기왕이면 집 근처에 정말 맛있는 만두가게가 생겼다는 사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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