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소방서에서 일하는 구급대원이야. 초면부터 반말짓거리인 게 맘에 안 들면 뭐라 떠드나 지켜보는 심정으로 봐도 좋고, 상관없다면 그냥 편하게 내 얘길 들어줬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지만 세상이 살만하다는 이야기를 해주려는 건 아니야. 세상은 지옥이야. 특히 요즘은.
우리끼리는 요새가 자살 시즌이라고 해. 왜냐하면 이제 정말 봄이거든. 내가 소방서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사람들은 겨울엔 자살을 많이 안 하더라고. 왜 그럴까 고민해 봤지. 아마도 봄이 오면 날은 풀리는데 사람 마음의 온도는 차가운 그대로여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 그 괴리를 견디기 어려운 거야. 비슷하게 비가 오는 날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많지 않았어. 사람은 따뜻할 때 더 많이 죽어. 적어도 내 경험으론 그래.
난 애가 둘이야. 뭐 그런 얘기 많이 듣지? 자식들 때문이라도, 아니면 남은 가족 생각해서라도 자살하는 건 아니라고. 그거 다 개소리야. 내가 죽게 생겼는데 가족까지 챙길 정신이 있을 리가 없지. 오히려 가족들이 자살을 부추기는 경우도 부지기수야. 나만해도 그래. 오래된 클리셰 같은 표현이라 좀 꺼려지는데, 클리셰란 말이 궁금하면 찾아봐. 궁금하지?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사람은 그냥 궁금한 힘으로 사는 거야. 여하튼 야간 근무한다고 밤새 일하고 오면 우리 집은 그냥 개판이야. 그래서 결혼 초반엔 와이프랑 이걸로 엄청 싸웠어. 집은 개판이지, 애들 유치원, 학교 다녀오면 겨우 정리했던 집은 다시 개판이 되지, 있는 힘 없는 힘 끌어모아서 저녁밥 차려 놓으면 다 먹고 감사하단 인사도 없어, 쉬려고 잠깐 소파에 누우면 남들처럼 집안일 좀 도우라고 잔소리하는 거에 버럭 했다가 빈정 상해서 또 싸우고, 겨우 안정이 돼서 잘 밤에 휴대폰 알림이 띵띵띵 울려서 보면 보험사고 카드사고 은행대출이자고 하이에나 같은 자식들이 4인가족 외벌이 월 300도 못 버는 내 통장을 두고 지들끼리 겁나게 물어뜯고 있어. 그러고 나면 정말 통장에 돈이 하나도 안 남아. 0이야. 꼴에 공무원이라고 겸직도 못해서 내 수입은 평생 그 수준인데 그걸 두고 미안한 마음도 생기질 않나 봐. 아무튼 답답한 마음에 성질이 나서 휴대폰을 (비싼 거니까 이불 위에) 집어던지고 잠이 드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이 밝아. 그러고 나면 똑같은 하루가 다시 반복이 되지. 미쳐버려.
사람은 정말 고통스러울 때 죽을 맘을 먹는 것 같아. 우리 외할머니도 연탄불 피워서 돌아가셨는데 위암으로 몇 년을 고생하다가 유서에 도저히 아파서 안 되겠다고 쓰고선 돌아가셨어. 별 다른 얘기도 없었지. 특히 첫째 손주인 나에 대한 염려라던가 그런 게 전혀 없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와중에도 난 삐쳐있었어. 정말이야. 죽은 사람한테 삐쳐있었다고. 당시엔 그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아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해. 아픈 거 외엔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는 거지. 첫째 손주고 나발이고 그냥 아파 죽겠는 거야. 아파 죽겠어서 죽는다는데 가족을 생각하시라고, 세상은 살 만하다고, 아니 미쳤냐고. 정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데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잖아.
자살 대신에 나를 괴롭히는 환경이나, 사람이나, 가족이나 뭐 그런 것들을 변화시키거나 그것들에 복수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 쉽지가 않아. 특히 세상이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걸 바꾸려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그래서 위정자들이 웃는 얼굴로 불의를 저지르는 거고. 네가 그런 수고를 감수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혹시나 바꿔보려는 마음이 들거든 그냥 필요할 때 숟가락만 얹으면 돼. 세상은 그런 숟가락들이 서서히 바꿔 가는 거니까. 어쨌든 세상을 바꾸는 건 일단 힘들고, 그렇다고 사람이나 가족을 바꾸기엔 네 재주가 모자라지. 나도 알아. 우리 와이프도 10년을 같이 살면서 앞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별짓 다 해 봤는데 많이 안 달라졌어. 나도 마찬가지고. 그냥 내려놓고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도모하는 게 최선이야. 그럼 이제 마지막 남은 수단은 이 모든 것들에 칼과 망치를 디밀어 부숴버리는 거지? 그건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거고. 대신 너를 끝장내려는 거잖아. 칭찬 하나만 할게. 넌 그래서 상냥한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야.
칭찬 한마디 했다고 기분이 좋아진 건 아니겠지? 우쭐하지 마. 네가 당장 오늘 죽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어지는지 얘기해 줄게. 일단 심정지는 상황실에서 출동지령 내리는 것부터가 달라. 난리를 치거든. 심정지 추정 출동입니다, 위치는 어디, 엄마가, 아빠가,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친구가, 여자친구가, 남자친구가, 죽었다고 합니다, 죽은 것 같다고 합니다, 목을 맸다고 합니다, 가스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몇 층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진짜 방송을 듣는 순간 내가 심장마비가 올 지경이야. 출동하는 동안 운전원은 사이렌을 최대로 켜고 잘 나가지도 않는 스타렉스 구급차 악셀을 풀로 밟고 빨간 불에 차로를 막 역주행해서 달려. 그 와중에 신고자들한테 빨리 오라고 계속 전화 오고, 본부에서도 쉴 새 없이 무전을 때려. 진짜 미쳐 버려. 목숨 걸고 달려서 도착하면 누군가의 시신이 기다리고 있지. 제일 거지 같은 게 뭔 줄 알아? 자살한 사람들은 보통 안 보이는데서 죽기 때문에 살리기엔 너무 늦게 발견이 된다는 거야. 근데 우린 그걸 알고도 달리는 거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뛰어가는데 역시나 숨이 끊어진 지 오래인 사람이, 사람이었던 것이 기다리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한 사람들이나 가족들은 우리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기대에 찬 눈빛을 해, 살려달라고 소리쳐, 하나님이고 부처님이고 막 나와.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너무 익숙한 무력감에 온몸에 힘이 빠져서 다시 소방서로 돌아가지. 그리고 그런 날은 정말 미친 사람처럼 술을 퍼먹어.
우울한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닌데 미안해. 여하튼 네가 죽으면 내가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완벽한 해결책이 되진 않을 텐데 이렇게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밖으로 나가서 걷는 거야.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으면 억지로 뭐도 좀 먹고, 목마르면 편의점에서 물도 사다가 마시고. 그러다가 막 뽐이 오는 물건이 눈에 들어오면 질러버리고. 그러려면 지갑은 좀 두둑하게 만들어서 나가야겠지? 돈 없어? 친구한테 빌려도 좋고, 그게 싫으면 요새 ATM기에 카드 넣으면 현금 서비스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 많이는 필요 없을 거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걷는 거니까. 그렇게 걷다 보면 꼭 괜찮은 사람을 만난다거나 쓸만한 뭔가를 줍게 되어 있거든. 인생이 그래. 대학 수업 때 들은 얘긴데, 아메바가 진화해서 너와 같은 사람이 되려면 허리케인에 부품을 모두 던져 넣고 기도해서 점보비행기가 탄생하는 것과 비슷한 확률이 필요하데. 그러니까 그냥 걷다가 너를 반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날 확률은 그보다 훨씬 높은 거야. 그러니까 일단 나가서 걸으라고.
나는 지금 편지를 띄우는 거야. 알지? 옛날 영화 같은 데 보면 유리병에 편지를 담아서 바다에 띄우잖아. 그걸 건너편 해변을 서성이던 누군가가 주워 들고. 네가 만에 하나 이 글을 읽는다면 그런 엄청난 우연을 넘어서 나의 이야기를 듣는 거야. 별로 칭찬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다 네가 상냥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나쁜 놈들은 이런 데 관심 없거든. 남의 뒤통수쳐서 3년 안에 100억 만들기, 이런 데나 혹하지. 삶이나 죽음에 대해 너처럼 고민하지 않아.
사실 이 글은 너만 보면 돼. 조회수가 1이라도 된다고. 10만 명이 봤는데 개중에 자살에 대해 1도 생각 없는 사람이 본다면 아무 의미 없는 거야. 딱 너만 위해서 세 시간이나 적은 거니까 정성을 봐서라도 오늘은 죽을 생각 말고 밖에 나가서 걸어. 부탁할게. 나 오늘 출근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