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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작년과 재작년은 소방 지역대에서 근무를 했다. 지역대는 경찰서로 치면 동네 파출소 같은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안전센터에 소속되어 있으며 센터가 감당하기엔 출동 거리가 다소 멀거나 지형적 특색이 강한(산간오지나 물가, 터널 등) 곳에 지역대를 만든다. 지난 2년간 근무했던 곳은 깊고 깊은 산골짜기 어느 마을 면사무소 옆에 자리했다. 출동건수는 많지 않은 대신 한 번 걸리면 큰 게 걸렸다. 시골사람들은 엄살이 없었다. 하나 예를 들면 전기톱으로 가지치기를 하다가 위팔이 절반쯤 잘린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되려 내가 마음이 급해 전화를 걸었더니, 그냥 천천히 와요. 했다. 다행히 동맥을 건드리지 않아 출혈은 많지 않았다. 암만 그래도 그렇지, 심약한 사람이 봤다면 거품을 물었을 법한 부상이었다.


그날은 조용히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도시 사람들이야 밤이 깊으면 밖으로 나와 한 잔 기울이기 바쁘지만 시골에선 해 떨어지면 농사 끝이고, 다들 집에 들어가서 자기 바빴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낮에 일을 하면서 마셨다. 대낮부터 햇볕과 술기운에 검붉게 피부가 그을린 아저씨들을 종종 만났다. 안녕하심까. 오늘은 일 없네? 말하며 불콰한 얼굴로 지역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비치되어 있는 믹스 커피를 멋대로 타 마시고 갔다. 하지만 달이 뜨면 길에는 사람이 없고, 보통 그러면 출동도 없었다. 하고 마음을 놓은 게 화근이었다.

복통환자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빼곡하게 모인 동네였다. 이런 곳은 지령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집을 찾아도 미궁에 들어선 양 헷갈렸다. 모르겠어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면, 그 빨간 지붕 옆 집, 아니 그 영식이네 개집 바로 앞 집 배나무 심은 데 거기예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날도 손바닥에 침이라도 뱉어 집을 찾아야 하나 하고 있는데 다행히 환자와 보호자가 미궁의 어느 구석에서 그림자를 걷고 걸어 나왔다. 여성 환자는 20대 중반으로, 정신지체가 있었다. 보호자는 어머니였다.

배가 너무 아파요.

잠시만요. 말씀하지 마세요. 혈압 좀 잴게요.

너무 아파요.

복통만큼 애매한 것도 없었다. 배를 열어 들여다볼 수도 없고, 만져봐서 어느 부위가 어떤 양상으로 얼마나 아픈지를 가늠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환자의 아랫배에서 둥글고 단단한 물체가 만져졌다. 너무 아파. 죽겠어. 엄마, 엄마. 환자의 호소는 점차 비명에 가까워졌다. 그러다 중간중간 악 소리를 질렀는데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혈압만 다소 높게 측정될 뿐 생체징후도 이상한 점이 없었다. 경험치가 전무한 상황에 나는 그저 운전원에게 병원까지 얼마나 남았느냐 묻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쥐어짜듯 몸을 비틀던 환자가 어느 순간 탁 하고 긴장을 풀었다. 일그러졌던 표정도 편안해졌다. 동시에 환자가 실려있던 들것 아래로 피와 물과 소변이 섞여서 흘러내렸다. 여자의 아랫배에 자리 잡고 있던 둥글고 단단한 물체도 사라졌다. 유산이었다.

여자는 뱃속에 아이가 들어선지도 몰랐다. 여자의 어머니는 놀라서 말을 잃었다. 여자의 표정은 그저 편안했다. 웃기까지 했다. 처음 갔던 병원이 산부인과 진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여자와 함께 들것에 실려있던, 사람의 형상을 갖추다 만 점토 덩어리 같은 그것을 병원에 넘겼다.


귀소가 늦어져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다. 아내와 함께 햄버거를 먹다가, 지금 나올 것 같아. 하는 바람에 뚜벅뚜벅 산부인과에 걸어가서 두 시간 만에 둘째를 낳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둘째는 눈이 너무 커서 꼭 세상을 처음 만나 놀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 겪는 일이었지만 나도 그 순간의 세상이 놀랍다고 느꼈다.


지역대로 돌아와서 구급차를 온통 까뒤집어 청소를 했다. 물을 뿌려 걸레로 바닥을 닦고 들것은 고압 호스로 씻어냈다. 내부를 닦는다고 소독티슈 한 통을 다 쓴 것 같다. 물기를 말려야 했기 때문에 상황실에 앞으로 한두 시간은 구급활동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들것은 벽에 세우고, 구급차는 뒷문을 열어 바람이 통하게 했다. 그리고 밖에 그냥 서 있었다. 출동 나갔다가 거기 뭘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때때로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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