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스물이 된 여자아이였다. 내 눈에 스물이면 아직 소녀고 꼬마다. 서른은 넘겨야 아가씨다. 그래서 스무 살 여자애가 복도식 아파트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을 때 출동하는 내내 의문이었다. 어째서 피자마자 황망히 질 결심을 했을까.
아파트는 끽해야 7층 높이였다. 7층이면 어림잡아 20 미터가 조금 넘는다. 30 미터 이상에서 떨어지면 즉사지만 20 미터는 조금 다르다. 현장에 도착하면 심장이 아직 살아있는 경우가 많다. 옛날 어른들이 숯불에 구워 먹으려고 참개구리 뒷다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치면 종종 죽은 줄 알았던 그것이 불판에 오르자마자 펄쩍 뛰어내리고, 곧장 숨이 끊어지던 거랑 비슷하다. 겉보기엔 멀쩡해서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든다. 하지만 심장을 누르려고 몸에 손을 대자마자 안다. 온몸의 뼈가 무너져서 가슴에서 와라락 와라락 소리가 난다. 마치 연체동물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기분이 된다. 그래서 대개는 과다한 내부출혈로 인한 쇼크사에 이른다.
소녀는 아파트 화단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었다. 아주 좋은 신호였고,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화단에 빼곡하게 심은 정원수가 제 몫을 했지 싶었다. 길게 자란 까만 생머리를 조심스럽게 치우며 경추보호대를 적용했다. 내 손 꽉 잡아 봐요. 소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덜덜 떨렸다. 신발을 벗기며 말했다. 만지는 거 느껴져요? 움직여 봐요. 말단의 감각도 이상 없었다. 천운이었다. 소녀의 몸을 천천히 짚어가며 혹 숨어있을지 모를 외상을 확인했다. 그러다 팔뚝 안쪽에 커터날로 무수히 그어놓은 자국을 발견했다. 잘 아는 상처였다. 그건 괴로워서 만드는 상처가 아니다. 깊은 허무를 못 견뎌서 공중에 흔적을 남기려는 발버둥이고, 살아있는가 실감이 나지 않아 까마득한 동굴 안쪽에서 날짜를 셈하기 위해 새기는 우울한 사선이다. 그러므로 소녀를 난간 밖으로 끄집어낸 건 슬픔 같은 단순한 게 아니었다. 더 아득한 무언가였다.
소녀의 아버지가 도착했다. 터울이 많이 나는 오빠라고 해도 믿길 만큼 젊었다. 아버지는 누워서 우는 소녀를 말없이 보다가 그 옆에 쪼그려 앉더니, 자기도 얼굴을 감싸 쥐고 울기 시작했다.
첫째를 하교시키려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렸다. 봄비였다. 교문 앞은 제 새끼를 연인 마냥 아득한 눈으로 기다리는 우산 쓴 부모들로 빼곡했다. 나도 그중 하나지 싶었다. 내 딸은 밥 먹는 것 빼고 뭐든 느렸다. 다른 아이들은 우산을 들었건 아니건 제 엄마 아빠를 찾자마자 달음박질을 치는데, 내 딸은 제일 나중에 건물 현관으로 나와서 제 덩치만 한 우산을 편다고 한참을 낑낑댔다. 겨우 몇 걸음 떼는가 싶더니 이번엔 실내화가 문제였다. 빗물이 그득한 교정을 실내화를 신고 한참 걷다가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다시 현관으로 돌아갔다. 신발을 갈아 신는다고 또 헤맸다. 그제야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고 느긋하게 걸어왔다. 세상 급한 일 없는 게 영락없는 내 새끼였다.
손을 잡고 걸었다. 곧 치과 예약이 있어 걸음을 서둘렀다. 그런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아이가 손을 잡아끌며 천천히 멈추어 섰다.
아빠.
뭐야. 왜 또.
꽃길이 피었어.
벚꽃 잎이 빗물을 맞고 나무 발치에 내려 있었다. 걷는 내내 벚나무라 길에 꽃잎이 진 걸 두고 꽃길이 피었다 했다. 문득 울고 있던 그 소녀가 떠올랐다. 소녀는 꽃비였다. 비바람에 내려앉아도 분명 꽃길로 다시 피어날 숨 쉬는 꽃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