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형 여자 좀 소개시켜줘.
올해로 50을 맞은 노총각 주취자로 토요일 밤 출동의 포문을 열었다. 뒤로 넘어져 툭 불거진 뒤통수에서 묽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나이 먹은 총각은 저보다도 더 나이가 먹은 총각 형님들에게 술을 얻어 마시고 화장실에서 오줌을 갈기다 중심을 잃고 나자빠졌다. 누덕누덕한 행색에 이빨도 군데군데 무너져서 처음엔 환갑은 넘겼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내세울 게 뱃골에 밀어 넣은 밥그릇 수뿐인 많은 사람들처럼 그도 나이 많이 먹은 걸 자랑하며 하대를 했다. 동상, 나 여자 좀 소개시켜줘. 그 비슷한 말을 병원 가는 내내 웅엉거렸다. 어지간히 사람이 고파보였다.
두 번째 출동도 주취자였다.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통증이 심한지 걷지를 못했다. 근육이 짧아진 모양이 위팔뼈가 부러졌거나 어깨가 탈골이 되었지 싶었다. 부목을 대자 조금 안정되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떨며 푸우우 한숨을 뱉었다. 술을 먹고 걸어서 귀가하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보통은 땅바닥에 손을 짚어 손목이나 팔 아래쪽에 골절이 생기는데 위쪽이 부러진 게 특이했다. 머리에는 부상이 없는 걸로 보아 모로 넘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얼마나 술을 퍼마시면 세상이 옆으로 넘어가는 줄도 모를 수 있을까.
세 번째 출동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집에서 술을 마시다 넘어졌단다. 이쯤 되면 오늘의 출동 테마는 술기운에 의한 낙상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성싶었다. 사실 금요일이나 토요일 밤에 주취자들이 넘어져서 신고를 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월요일 아침에 병원 예약을 잡은 가난한 노인들이 택시처럼 구급차를 부르고, 날이 맑은 날에 유독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고, 흐린 날에 심정지가 많이 터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은 밤새 주취자들과 실랑이할 각오를 하고 출근해야 한다.
우리 아버지 연배 정도로 뵈는 할아버지였다. 할머니와 둘만 사는 오래된 주택에서 통증과 술기운에 범벅이 되어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쩌다 다쳤는가 물었더니 옥상으로 향하는 좁은 계단에서 굴렀단다.
그러니까 거길 왜 기어 올라갔나 몰라. 할머니가 쏘아붙였다.
약주는 얼마나 하셨어요.
세 병. 할아버지가 답하자,
한 댓 병 처먹었어. 그냥 저 계단 위에서 휘리릭 공중제비를 돌았어. 하고 할머니가 덧붙이는 말이 너무 웃겨서 입술을 꽉 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할아버지의 목에 경추보호대를 적용했다. 팔다리에 있는 찰과상을 드레싱 하는 동안은 거의 묵언수행하는 심정이 되었다. 씰룩이는 입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처치를 했다. 할아버지를 들것에 실어 나오려는데, 아들 내외와 손주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우리 아버지 엄마가 그런 것처럼 낡은 사진이 담긴 액자들을 무슨 대단한 전시물인양 잘 보이는 곳에 쪼르르 진열해 두었다. 나이 먹으면 나도 비슷하리란 생각을 잠깐 했다.
병원 입구의 트리아제(환자 분류) 간호사 선생님이 환자를 파악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세 병 먹었어, 할머니는 댓 병 처먹었어를 다시 뇌었고, 나는 높이 솟은 달 아래 막걸리병을 들고 계단 아래로 공중제비를 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인계를 마치고 병원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고성이 오가길래 쳐다보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원무과 직원과 그를 두고 살살 약을 올리는 오늘 첫 출동의 주인공이 눈에 띄었다.
나 돈 없는데?
아니, 지난번에도 수납 안 하시고 가셨잖아요.
알아, 근데 내가 돈이 없어.
돈을 내셔야지요.
없다니까.
최선을 다해 돈을 받아내려는 원무과 직원도, 그걸 최선을 다해 회피하는 노총각도 각각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다. 먹고살기 위해 내내 술 취한 사람들을 병원에 실어다 주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연습 없는 한 번뿐이라 뛰는 모양이 영 어설프고 불안해도, 어쨌거나 공중제비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 끝에는 모두에게 공정한 죽음의 착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죽음은 공중제비를 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