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새끼다

by 백경

나는 원래 애들을 싫어했다. 오죽하면 애가 생길까 봐 결혼도 않는다고 했다. 늘 부산스럽고, 불안하고, 옆자리에 종유석처럼 달라붙어 귓밥이 다 떨어져 나갈 만큼 큰 소리로 울거나 웃는 존재. 대화와 타협이 결여된 입법기구. 고집불통 편도 급행열차.

그러다 첫째가 엄마 뱃속에 들어섰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편지를 적었다. 몇 번 그러다가 도저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관두긴 했지만. 엄마 배를 뻥뻥 찰 만큼 자랐을 땐 뱃속에 확실히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고, 진통하는 아내의 비명을 듣느라 혼이 다 나간 상태로 산도에서 갓 구워낸 태양을 건네받았을 때는 손이 너무 뜨거워서 눈물이 났다.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책을 읽어주고, 그러다 소파에 한 뭉치가 되어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는 함께 익어갔다. 애라면 질색을 하던 내 안의 오랜 열매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거름이 되었고, 내새끼라면 사족을 못 쓰는 꽃이 피더니 남의 새끼까지 예뻐하는 이상하면서도 새로운 열매가 맺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 밑에 밑에 집에는 여자아이 하나와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있는데, 큰 딸이 앞장서고 어린 두 아들이 좌우에서 뒤뚱뒤뚱 제 엄마를 호위하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멋질 수가 없다. 잘 말린 계란말이보다도 예쁘다.


그날도 그랬다. 낡은 연립주택의 꼭대기 층 문을 열자 갓 돌을 넘긴 남자아이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출동한 우리를 쳐다봤다. 그 눈엔 제 엄마도 모를 비밀이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어른이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깊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옆에는 한쪽 발에 깁스를 한 아이 엄마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시엄마가 먹는 우울증 약을 애가 집어 먹었다고 깁스한 발을 쿵쿵 굴러댔다. 시엄마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열려 있는 약병이 의심의 불을 지핀 원인이었고, 무조건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119에 신고를 했다. 아이 엄마는 젊고 예뻤다. 그러나 잔뜩 인상을 구기고 시엄마에게 험한 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은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그 얼굴이 마치 비좁은 여자의 집 거실 한구석에 터질 듯 쓰레기가 담긴 종량제봉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발이 불편했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품에 안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에게서 분유 냄새와 기저귀에 지린 오줌냄새가 났다. 기저귀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모양이 적어도 두 시간은 채워둔 것 같았다. 구급차엔 임산부나 노인을 위한 것뿐이라 아이의 기저귀를 바꿔줄 수 없었다. 병원 가는 동안도 여자는 계속 시엄마의 욕을 해 댔고,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아이를 안은 채로 간호사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했다. 생체 징후상 특별한 이상이 없고 눈에 보이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진료를 보려면 장시간 대기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는 분개했다. 잘못되면 니가 책임질 거냐고. 구급차 타고 왔는데 어째서 진료가 늦어지는 거냐고.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애먼 간호사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며 손가락질을 했고, 그걸 지켜보던 응급실 입구의 보안요원이 다가와서 여자를 제지했다. 보안요원의 험한 인상과 자기의 세 배는 될 법한 덩치에 기가 죽은 여자는 흥칫흥칫 콧바람을 날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여전히 아이를 안고 있는 내게 쏘아붙였다.

우리 가요.

네?

집에 가요.

집에는 못 데려다 드리는데요.

그럼 어떻게 하라구요! 팩 소리를 치는 여자에게, 내 인생도 감당이 안 되는 마당에 당신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만 꿈뻑꿈뻑하는 아이만 아니었다면 정말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본부 상황실에 아이 엄마가 발도 불편하고 집도 가까우니 그냥 구급차로 귀가시키겠노라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먼저 개선장군처럼 가슴을 펴고 구급차에 올랐다. 아이와 내가 뒤따랐다.

다시 여자의 집까지 조심조심 계단을 밟았다. 잠깐 안고 있었다고 친해졌는지 아이는 두둥실 떠오르는 구급대원 비행기 위에서 깔깔 웃었다. 남의 새끼다. 남의 새낀데 너무 예뻐서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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