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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03. 2023

사람의 씨앗

 몸을 오소소 떨게 만드는 단어들이 있다. 어렸을 때는 그런 게 좋았다. 이를테면 한참 영화를 찍을 때는 감독님 하고 누가 불러주는 게 좋았다. 뭐가 된 것 같았고 먼지 같은 세상에서 홀로 색이 입혀진 느낌을 받았다. 서울서 스크린을 빌려 관객을 만났던 몇 번은 그 느낌이 최고조에 달했다. 감독님 호칭에 어깨뽕이 있는 대로 들어찬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밤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예술하는 사람 특유의 냉소를 질질 흘리고 다녔다. 중2병이었다. 지금 누군가 찾아와 감독님 하고 부른다면 그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찬 뒤, 뒤돌아서 전력질주로 도망갈 것이 분명하다. 첫사랑처럼 설레기도 하지만 떠올리기 조차 부담스러운 기억이다.

 예전이 감독님이었다면 요새는 작가님이다. 작년 9월인가부터 줄기차게 글짓기를 하면서도 여전히 작가님이란 말은 뜨악하게 들린다. 그냥 편하게 오빠 하고 불러주면 참 좋겠다. 나이 먹고 오빠 소리가 그리워져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정말 아니다. 작가님이란 말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하늘까지 깃이 올라간 빨간 망토처럼 예술하는 사람이란 뉘앙스가 깃들어 있는 탓이다. 이제 예술 안 하고 싶다. 할 줄도 모르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어느 날 첫째가 어제 적은 것이라며 일기장을 가져왔다. 아빠 없는 밤은 엄마에게 괜한 부담 지우기 싫어서 일기를 쓰든 말든 편하게 지내라 한다. 은근슬쩍 안 쓰고 넘어가도 모른 척해주는데 굳이 일기장을 들고 오는 폼이 수상했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가, 햄버거가 먹고 싶은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질색하는 유튜브를 시청하기 위한 밑밥인가. 아이의 순전한 마음을 시작부터 의심하는 아빠의 마음이 참으로 궁색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예감이 들어맞기 때문에 별 기대 없이 일기장을 열었다.


예쁜 세(새)가 뽀로롱 나의 아름다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내 마음도 우리 마음도

그 씨가 자라면?

나 우리 가족 모두 사랑해


 예술하는 걸 질색팔색하는 아빠는 벌써부터 문예지에 최연소로 등단한 만 7세 시인을 마주한 심정이 되었다. 내 새끼한테 붙여 놓으니 작가며 시인이며 하는 타이틀도 뜨악한 느낌 없이 아주 잘 어울렸다. 우리 엄마가 나 어렸을 때 천잰 줄 알았다고 설레발치던 거랑 비슷했다. 주저리주저리 해석을 달기가 미안해서 그냥 한 마디만 거들자면, 아이의 글이 비유를 품고 있는 모양이 무엇보다도 놀라웠다. 그건 책을 많이 본다고 생기는 것도, 그렇다고 글을 많이 적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마음에 무언가 들어차서 넘쳐야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이의 심장에서 사람의 씨앗이 움트고 있었다.

 

  네가 자라며 황금장미를 움켜쥐고 욕망의 횃대를 오를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 사람의 마음이 들꽃이나 잡풀처럼 번져 있다면 좋겠다. 거름을 주어 예쁜 꽃을 피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는 일만이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네가 알았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다면 함께 걷자. 네 어린 날의 시처럼, 아빠랑 함께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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