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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pr 12. 2023

진달래 땡땡이

 오늘 부활절이야. 아내가 말했다.

 그렇구나. 나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부활절이고 감사절이고 고난주간이고 고구마주간이고 간에 도통 헷갈린다. 십일조며 감사헌금이며 선교헌금이며 건축헌금이며 엄숙한 필체로 적은 색색깔로 빛나는 봉투를 받아도 얼마를 집어넣어야 할지 매번 고민이다. 솔직히 고민만 하고 금액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 용돈 드릴 때 하는 말처럼, 얼마 못 넣었어요 할머, 아니 하느님. 하고 다소 찔리는 마음으로 바구니에 돈을 넣는다. 부활절은 그래서 더 부담스럽다. 일종의 상징으로써 삶은 계란을 받아오기 때문이다. 삶은 계란만큼은 더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얼마만큼인지 모르겠다. 만 원쯤 더 넣으면 되려나.


 쓸데없는 일에 끌탕하는 게 딱 내새끼인 첫째도 이날 따라 유독 교회에 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이유인즉 부활절엔 교회에서 아이들 예배는 않고 약 두 시간에 걸쳐 총 진군(전역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아직도 깜짝깜짝 놀란다) 예배를 하기 때문에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침 먹고 머리 묶이고 옷 입고 준비하는 시간 내내 교회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렀다.

 가지 마. 내가 말했다.

 아니야, 갈게요. 아빠가 혹 기분이 상했나 싶어 억지로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가지 말자. 화난 거 아니고, 그냥 아빠도 가기 싫어졌어.

 아내에게 만원 짜리를 하나 쥐어주고 둘째랑 둘이 교회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아내는 원체 교회의 공기를 좋아하고 둘째는 삶은 계란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에 벌써 양말 신고 제일 아끼는 머리핀까지 꽂았다. 그래서 믿음이 부족한 나와 첫째는 그동안 룰루랄라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뒤 옆에 딸린 자동 세차 기기를 이용해 세차를 했다. 정지한 차의 앞 뒤로 기계가 움직이며 물과 거품을 뿌리자, 마치 가만히 있는 차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게 뭐라고 또 재미나는지 첫째와 나는 앞으로 간다아, 뒤로 간다아 소리치며 기계가 멈출 때까지 낄낄댔다. 주유소 뒤꼍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걸레로 윤이 나게 닦았다. 그리고 집 근처 뒷산을 향해 싱그러운 차를 몰고 갔다.


 아직 사월 초입이라 산은 봄의 앞자락에 걸쳐 있었다. 지난해  내려앉은 적갈색 솔잎이 바닥에 폭신하게 깔렸고, 나뭇가지엔 막 움트기 시작한 연녹색 봉오리들이 언제 튀어오를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산 타는 첫째 딸은 심마니라 해도 믿을 성싶었다. 길게 자란 침엽수 사이로 부서지는 볕을 쥐고 위로, 위로, 제 아빠도 버리고 갈 것처럼 쌩 쌩 날았다.

 산을 오르다 보니 근처에 나무가 자라지 않아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바다색 하늘을 배경으로 엉덩이가 둥글고 분홍 얼굴이 푸근한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누군가 푸른 도화지를 가져다 허공에 펼치고 분홍 점을 땡땡땡 찍어놓은 것도 같았다. 꽃을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기뻐하는 것을 넘어 경건하기까지 했다. 혹 부활한 예수가 교회 밖에 몰래 진달래로 화해서 우리가 찾으러 오길 기다렸던 건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예배를 마치고 온 둘째는 삶은 계란 두 개와 팥시루떡 두 덩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제 언니를 만나자마자 하나씩 챙겨주는 조막만 한 손이 참 기특했다. 사랑도, 부활도, 교회도, 그 손에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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