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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02. 2023

사회부적응자의 San Francisco

 엄마는 가수였다. 시쳇말로 통키타 카수. 디제이가 LP판을 꺼내어 음악을 틀어주는 라이브카페에서 노래를 했다. 40년도 더 된 일이다. 환갑이 넘어서도 고향땅을 못 뜨는 덕에, 지금도 가끔 알만한 사람들이 불러서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나가 한 곡씩 뽑는다. 그리고 한 이십만 원쯤 받아와서 온 식구 고기를 사 먹인다. 과장 조금 보태서 내가 가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엄마 노래 삯 덕분이다. 행사가 많아지는 봄이다. 올해엔 몇 번이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는 태교도 순전히 자기 목소리로 했다. 요즘처럼 아빠들이 나서서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자궁을 벗어나는 순간 천재가 만들어지는 기가 막힌 태교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태교는 순전히 엄마들 재량이었고, 그 엄마의 성향을 따라갔다. 장사하느라 바쁜 사람은 장사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싸우느라 바쁜 사람은 싸우는 목소리가, 술 먹고 바람피우는 남편 때문에 매일 우는 여자는 밑도 끝도 없는 흐느낌이 태교를 담당했다. 그리고 그것이 태어나는 아이의 내적 뿌리를 이루었다. 나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엄마의 노래가 그 역할을 맡았다. 운이 나쁘다 말하는 건 나름 MZ에 걸쳐 있는 이 시대의 선두주자인 내가, 감성은 70년대, 아무리 좋게 봐줘도 80년대 초반 즈음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엄마 취향을 따라 국내산이 아니고 수입산 감성이다. 존 덴버, 피터 폴 앤 메리, 비지스, 비틀즈는 워낙 유명하니 제하고, 사이먼 앤 가펑클, 카펜터즈, 나는 그 이름만 들어도 다시 심장이 뛰는 기분이 들지만 연령대가 비슷한 이들에게 물으면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게 뭔데?


 70, 80년대 대한민국 바깥은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히피와 대마가 유행했다고 한다. 나는 그 철 지난 남의 유행을 가져다 인생에 갖다 붙이곤 했다. 나름 명문고를 다녔는데, 야자를 빼먹고 만취한 채 밤새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던가, 새로 온 원어민 교사에게 영어로 시를 적어 사랑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 교사는 내게 성경책을 선물해 주고 어느 날 학교를 떠났다. 혹시 보고 있나요? 손 흔들어 주세요,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고3 담임선생님은 나쁜 의도는 없었겠지만 그 해 내도록 나를 또라이라고 추켜세웠다. 남들은 더 훌륭한 밥벌이를 위해 대학에 갔는데, 나는 20년 동안 찾아도 없었던 사랑과 자유와 평화와 히피와 대마를 찾아 대학에 왔다. 연극을 두 차례 무대에 올리고,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20대가 저물었다.


 대학을 벗어나서도 나는 대체로 사회부적응자였다. 잠시 일했던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팝송을 가르치다가 원장선생님에게 혼나고, 체육관에서 일할 때도 회원들과 제대로 거리를 두지 못해서 대표에게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금기를 깨고 회원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게 지금의 아내다.


  소방서에 출근하기 시작했지만 엄마가 뱃속으로부터 물려준 기질이 쉽게 변하진 않았다. 이곳이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하는 보통의 직장이었다면 진작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쫓겨났을 것이다. 다행히 여기선 술에 취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필요이상의 연민을 느끼고 가까이한다고 해서 뭐라 꾸짖는 사람이 없다. 피 흘리는 사람에게 붕대 하나 더 덧댄다고 아까워하는 사장도 없다. 남의 뒤통수를 갈기며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헌금통에 매주 오천 원 짜리를 집어넣지 않아도 죄책감으로부터 다소 자유롭다. 그래서 나 같은 사회부적응자에게 딱 맞는 직장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한국 사람이 아는 노래가 하나뿐이라 슬픈, 스콧 맥켄지의 San Francisco가 흘러나왔다. 가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반전이나 저항의 메타포가 숨어있는 것도 같은데 일부러 전문가의 해석을 찾아보진 않았다. 그보단 엄마가 처음 들려줬던, 강렬한 첫 구절 있는 그대로의 의미가 난 좋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어쩌면 지금의 난 마침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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