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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05. 2023

다음 아이는.

 30초를 잘못 말한 거 아냐?


 아이가 30분이 넘도록 경련한다는 신고였다. 그래선 안되지만 의심부터 들었다. 엄마들이 제 아이 아픈 걸 과장해서 신고하는 경우도 많으니까. 자다가 침대 밑으로 굴러도, 걷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찧어도, 애들끼리 싸우다가 얼굴에 흉이 져도 신고를 했다. 어느 때는 후시딘만 발라도 나을 것 같은 상처를 가지고 구급차를 불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도 애아빠라 그 맘은 이해한다. 다만 부모들이 내 아이 때문에 정말 급한 환자가 구급차를 못 탈 수도 있다는 것만 좀 알았으면 좋겠다.


 열성 경련은 보통 1-2분 안쪽으로 끝나는데 30분을 넘겼다는 게 이상했다. 신고자는 경련을 마치고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아파트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눈이 크고 귀여운 들창코에 머리가 작은,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올해로 5살이라 했다.

 바쁘신데 불러서 죄송해요. 원래 한 20분이면 끝나는데 오늘은 너무 오래 해서.

 남자아이는 뇌이랑 없음증이라는 명칭의 희귀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게 엄마의 설명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경련하는 건 일상이고, 지체장애가 동반돼서 또래들처럼 제대로 말도 못 한다고 했다. 남의 인생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만약에 내가 아이 부모라면 아이를 돌보는 매일이 지옥이나 다름없으리라 생각했다. 엄마의 얼굴은 우울을 넘어서 거의 삶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병원 가는 내내 엄마도, 엄마 품의 아이도 초점 없는 눈이었다.


 귀소 해서 뇌이랑 없음증에 대해 질병관리청이 제작한 동영상을 찾아봤다. 17번 염색체에 무작위로 결손이 생겨 나타나는 유전자질환으로 밀러-디커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보통은 만 2세를 넘기지 못하고, 10세가 되기 전에 대부분 사망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보고된 케이스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열일곱 살이었다. 동영상 말미에 밀러-디커 증후군을 가진 아이 부모에게 유전자 검사를 권하는 부분이 있었다. 균형전좌(염색체상 총량에 이상은 없으나 염색체의 위치가 뒤바뀌는 현상)를 가진 부모의 경우 다시 동일 질환을 가진 아이를 출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유전자상 이상소견이 없을 경우 다음 아이는 건강하다고 덧붙였다. 분명히 그랬다. 아주 발랄한 성우의 목소리로, 다음 아이는 건강하다고.


 오늘은 어린이날인데 비가 내린다. 날 맑으면 당일치기로 드라이브나 다녀올 텐데 영 글렀다. 유행하는 슈퍼마리오 영화나 데려가서 한 편 보여주고, 햄버거 가게에 들러서 첫째는 치킨버거를, 둘째는 새우버거를 사줘야겠다. 그냥 그렇게, 재미없고 평범하게 휴일을 보내야겠다. 다음 아이를 생각할 일 없는 시시한 내 삶이 참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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