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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06. 2023

119 선생님, 신발 어디 갔어요?

  나는 개를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늘 개를 키웠다. 작은 마당에는 진돗개가, 달마시안이, 똥개가 머물며 학교에서 돌아온 소심하고 친구 없는 나를 반겼다. 개들은 손바닥만큼 작을 때 와서 부쩍부쩍 덩치가 커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그런 이별을 서너 번 겪고 난 뒤엔 더는 집에서 개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개를 보면 반갑고 짠하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좋다. 무는 개만 빼고.


 개 좀 잡아주세요, 개 좀!


 신을 벗고 집 안에 들어서는데 갈색털 요크셔 한 마리가 죽자고 달려들었다. 내 뒤꿈치를 세 번은 깨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소리치는 나와 눈이 마주친 뒤에야 시큰둥하게 개를 안았다. 글자 그대로 얼빠진 사람이란 말이 어울렸다. 보통은 구급대가 도착하자마자 안내를 하는데, 환자 어딨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그제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침대에 누운 아주머니는 연신 씨팔을 뇌며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구토백을 들고 오지 않아서 신고자에게 비닐봉지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손바닥 만한 봉지 한 장을 들고 왔다. 좀 더 가져다 달라했더니 고만한 봉지를 딱 하나 더 꺼내왔다. 앓느니 죽지. 답답함에 열이 뻗쳐서 구급차로 달려가 큼직한 구토백을 들고 왔다. 남자는 여전히 개만 품에 안고 멀뚱히 구경을 했다. 씨팔. 모로 누운 남자의 아내가 구토백에 점심밥을 게워내며 웅얼거렸다. 그 짧은 만남의 순간에도 환자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환자는 수 주 전에 메니에르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어지럼증, 청력 저하, 이명이 발작적으로 생기는 병이다. 기전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내림프 수종이나 알레르기 등으로 인해 유발된다는 보고가 있다. 쉽게 말해서 그냥 환장할 정도로 어지러워지는 병이다. 일자도 아니고 뱅글뱅글 회전식으로 지어진 계단을 간이형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동안 그녀는 연신 씨팔과 뭉개진 밥알을 구토백에 담았다. 남자 둘이 들기에도 무거웠다. 계단 폭도 좁고 디딤판의 너비도 좁아서 꽉 끼인 채로 게처럼 옆걸음을 쳐서 내려왔다. 무릎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신발은 조금 뒤에 신기로 하고 일단 맨발인 채로 환자를 현관문 앞 주들것에 실었다. 뒤에서 삐빅 소릴 내며 현관문이 닫혔다. 신발을 신기 위해 다시 문을 열려고 했지만 꼼짝도 않았다. 도어록 배터리가 운명한 것이다. 문 옆에는 남자가 개 대신 아내의 신발을 품에 안고 서 있었다.


  그래서 맨발로 병원까지 갔다. 애써 태연한 척 간호사 선생님께 환자를 인계하고 있었는데 평소 안면이 있던 다른 간호사 한 분이 입을 떼었다.

  어머, 119 선생님, 신발 어디 갔어요?

  어머 어머 그러게, 신발 어딨어요? 인계를 받던 간호사도 거들었다.

  사인이나 해주세요. 말하는 맨발의 구급대원을 두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못 참겠는지 그 자리에서 빵 터졌다. 대한민국 소방관 중에 맨발로 응급실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가 처음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 나쁘지도 않고 그냥 웃겼다. 아마 평생 같은 경험은 다시 못 해볼 것이다.


 이웃에 사는 환자의 지인이 신발을 가지고 오는 동안 상황실에 사정을 설명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지만 상황실 직원도 전화받다 말고 낄낄거렸다. 오늘은 내가 맨발인 덕에 여러 사람이 웃었다. 가끔 맨발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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