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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May 16. 2023

내가 좋은 아빠인 줄 알았다

 너는 눈이 쪼끄매서 화내면 안 돼.


 나 놀리는 낙으로 사는 고모가 종종 하는 말이다. 어렸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나이 먹을수록 신경이 쓰인다.

 그렇게 무서워 보여? 혹시나 하는 맘에 물으면,

 사람 잡을 얼굴이야. 답이 돌아온다. 그냥 묻지를 말 걸.


 내 자랑 같지만 어디 가서 사람 좋아 보인다는 말은 자주 듣는다. 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하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다. 직장이건 친구 관계건 누가 먼저 성을 내면 미안해가 먼저 나온다. 다툼을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고 애초에 화를 내는 법을 잘 모른다. 근처에서 누군가 씩씩 거리고 있으면 내가 뭘 잘못했나 지레 걱정하기 시작한다.

 집안이라고 크게 반전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건 아내건 내가 소리치는 걸 보는 일이 한 달 걸러 하루 있을까 말까다. 그마저도 톤을 낮추기 때문에 남들이 들으면 소리친다고 생각도 않을 정도다. 대신 진지하게 할 말이 있거나 아이들을 혼낼 일이 있으면 표정이 굳는다. 부러 험해 보이지 않으려고 눈만 부릅뜨고 입만 굳게 다무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인데, 이게 늘 문제다. 식구들은 내가 그냥 힘들어서 웃고 있지만 않아도 무슨 안부처럼 묻는다. 여보, 아빠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어?


 며칠 전 둘째 유치원 온라인 가정통신문에 아빠의 얼굴을 그린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그림 속 아빠는 도깨비처럼 눈을 치켜뜨고 삐죽삐죽 솟은 이빨을 드러내며 맹수도 겁먹고 줄행랑 칠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착한 둘째는 그런 아빠 옷에 토끼도 그려주고, 머리에는 리본도 매달아 주었다. 분명 성난 아빠를 달래주려는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가슴에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하기 전엔 생전 우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내 식구들한테 미안할 때마다 녹슨 수도꼭지처럼 줄줄 샌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니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둘째에게 소홀했던 게 그대로 그림에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가 아빠와의 등굣길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둘째는 주로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으로 등원했다. 귀가해서 놀이를 해도 내가 그나마 첫째와 노는 수준이 비슷해서 둘째는 거기에 맞춰주는 식으로 놀았고, 둘째가 가리는 게 없다는 핑계로 저녁 메뉴는 거의 첫째 위주로 선정이 되었다. 혼날 일이 있어야 겨우 아빠의 시선이 저를 향했으니, 그런 그림이 탄생한 것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둘째가 아빠를 가장 많이 차지할 수 있는 때는 잠들기 전 책 읽는 시간뿐이었다. 언니가 한글을 깨치기 시작하면서 읽어달란 말을 잘 않기 때문이다. 책장에서 동화책을 뽑고, 뽑고, 뽑고, 언니가 먼저 들어가서 잠들어도 계속 뽑아서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 마음을 진작에 읽었어야 했는데.


 둘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분무기를 찾아 이제 막 싹이 트기 시작한 강낭콩에 물을 주었다. 잠도 덜 깨어 그러고 있는 모습이 혹 저를 향한 아빠 마음도 자랐으면 하고 은연중에 기도하는 것 같아 또 마음이 아팠다.

 저녁엔 빨간 떡볶이 말고 네가 좋아하는 간장 떡볶이를 준비해야겠다. 안 익힌 오뎅이랑 소시지 자른 걸 네가 달라고 하면 엄마 몰래 하나 줘야겠다. 꼭, 웃는 얼굴로 그렇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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