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와서 어떡하니, 애들 딸기 따야 하는데.
비 와도 딸 걸.
그럴까.
엄만 얘들을 몰라?
(자동차 뒷좌석에서 아이들 합창) 딸기! 딸기! 딸기! 딸기!
시골집 텃밭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 먹으라고 딸기밭을 만들었다. 5월 초부터 작고 하얀 꽃들이 매달리더니, 어느 날부터 꽃은 사라지고 넓적한 잎새 틈틈이 빨갛게 익은 딸기가 달렸다. 할머니 집에 딸기 따러 가자고 약속한 날은 비가 내렸다. 와이퍼로 빗물을 가르며 나아가는 게 무색하게 아이들은 그저 딸기 딸 생각에 카시트 위에서 내내 엉덩이 춤이었다.
도착해서 차 문이 열리기 무섭게 두 딸은 딸기밭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인사부터 해야지. 핀잔을 줘도 소용없었다. 일부러 입혀 온 바람막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비가 오든 말든 딸기 밭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스뎅 보울을 하나씩 들고 작은 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딸기들에게 체할 것처럼 인사를 건넸다. 하나, 둘, 셋, 넷, 아빠 이건 너무 쪼끄매. 아빠 얘는 너무 못생겼어. 엄마 이거 봐봐, 이거.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이렇게 큰 딸기밭을 누가 만들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만들었지. 그렇구나, 와와, 이건 왕 딸기야, 왕 딸기. 비 맞지 말고 우산 밑에서 따! 네네! 깔깔. 허허허. 하하하하.
농약 하나 치지 않은 오리지날 노지 딸기가 보울 두 개에 가득 담겼다. 꽃가루며 먼지가 붙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식초를 뿌려 물에 잠시 담가 두었다. 뒤통수가 따가워서 보니, 눈을 떼면 아빠가 몰래 하나 집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안 먹는다. 내가 뭔 욕을 먹으려고. 깨끗이 씻긴 지는 잘 모르겠고, 눈빛과 몸짓으로 부리는 애들 성화에 못 이겨 대충 물기를 털어 딸기를 접시에 담았다. 보울에 담겼을 때는 잘 몰랐는데 접시 위에 펼쳐진 딸기들은 천태만상 비슷한 놈이 하나도 없었다. 구부러지고, 갈라지고, 머리 둘이 한 번에 솟은 것도 있고,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놈이 있는가 하면, 엄지발가락만큼 굵직한 놈도 있었다. 심지어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시판되는 하우스딸기처럼 다홍 일색이 아니라, 좀 시커먼 놈에 허여멀건한 놈에 시커멓고 허연 게 얼룩덜룩 섞인 놈에 개중엔 지 혼자 잘나서 밝은 빨강으로 빛나는 놈도 있었다. 딸기 풍년에 아이들은 관대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입에 예쁜 놈들만 골라서 쏙쏙 집어넣었다. 더 예쁜 놈들은 지들이 먹었다.
딸기는 대부분 쌔그럽고 향이 진했다. 단맛은 희미했다. 생김과 색깔이 다른 딸기들은 씹히는 느낌이며 맛과 향이 모두 달랐다. 마트에서 파는 딸기처럼 육즙이 많고 달콤한, 요새 말로 아는 맛이 아니었다. 사실 딸기는 원래 이런 맛일 텐데, 공장에서 찍어낸 듯 꼭 같은 크기로 플라스틱 포장에 담긴 그걸 '딸기다움'이라 여기고 살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사람도 그런 것 같았다. 삶의 열매는 저마다 맛도 향도 다른데 상품이 될 만큼 달콤하고 단단해지지 않았다고 인간다움을 잃은 것처럼 슬퍼했다. 남이 눈여겨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스스로도 내 삶을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딸기다움을 잊은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인간다움을 잊고 살았다.
사실 우리는 모두 자연미인이다. 하늘이 뻥 뚫린 노지에서 해와 비를 먹고 맺은 모두가 다른 열매다. 그러므로 너무 예뻐지려고, 달콤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 딸기맛이 원래 그런 것처럼 사는 맛도 원래 그렇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