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는 잠들지 않았다. 오징어잡이 배 몇이 안광 같은 불빛을 줄줄이 매달고 텅텅텅텅 물을 찼다. 깊은 밤의 품에서 그림자만 또렷한 뱃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에어비앤비(AirBnb)로 예약한 2층 숙소 베란다에 앉아 그걸 멀뚱히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항구 근처 해변에서 종일 유리자갈과 조개껍질을 줍고, 탕수육과 새우튀김을 배 터지게 먹은 뒤 잠이 들었다. 내내 피곤해 하던 아내는 아이들이 잠들기만 기다리다 저가 먼저 잠들어 버렸다. 두 아이와 아내 모두 잘 때면 팔다리를 휘저어 대서 좁은 침실에 내 몸 뉘일 곳이 없었다. 그건 반쯤은 핑계고, 그냥 잠이 오지 않았다. 밤이 지나는 게 아쉬웠다.
밖으로 나왔다. 아까 새벽 두 시 즈음엔 술에 취해 깔깔대던 목소리들이 들렸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고요했다. 골목골목 뱃전을 스치는 파도 소리만 쏴 쏴 지났다. 작은 항구 마을이었다. 구석진 동네라 찾아가려면 평소 다니던 바다보다 한 시간은 더 걸렸지만 보람은 있었다. 물이 맑은 바다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머리가 아직 듬성듬성 남아있었던 시절에 본 바다와 비슷했다. 어린 날의 기억도 듬성듬성했지만 조막만 한 내 손을 온통 감싸 쥔 크고 두꺼운 손은 또렷했다. 아버지는 계곡물이라 해도 믿을 만큼 투명한 바다에 나를 곧잘 데려갔다. 그래서 난 지금도 바다가 좋다.
껌이나 한 통 사서 씹을 요량으로 편의점을 찾았다. 주변은 온통 어두운데 편의점 불빛만 환해서 찾기 쉬웠다. 입구에서 청년 하나가 비질을 하고 있었다. 싸악 싸악 싸악 일정한 템포로 아스팔트 위를 빗자루가 지날 때마다 불빛을 받은 먼지가 반짝거렸다. 보는 사람이 없어도 비질은 묵묵히 이어졌다. 먼바다를 방황하던 손님이 출입구에 다가서자 그제야 하던 일을 멈췄다.
어섰쎄요.
껌 한 통과 생수 한 병을 집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실까 하다가 다음 날 운전하려면 조금이라도 자 둬야 한다는 생각에 참았다. 사지도 않을 걸 괜히 매대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피곤한 아르바이트생을 괴롭히는 것 같아 서둘러 계산대로 향했다. 흙갈색 피부에 새카만 눈썹, 밤보다도 더 어두운 눈동자의 미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의 오른 가슴에 매달린 명찰엔 '알 리' 두 글자만 적혔다. 이름이 알 리인지, 성이 알 리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과 리 사이의 띄어쓰기 두 칸 속에도 어떤 까마득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감쌈다.
수고하세요.
밖으로 나서는 나를 빗자루를 든 알 리가 뒤따랐다. 남의 나라에서 홀로 비질을 하는 그나, 바다 위로 별빛을 띄우는 오징어잡이 배 선원들이나, 구급차로 아픈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나나 꼭 하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요령도 없고 남의 등쳐먹을 줄도 몰라서 정해진 시간에 제 할 일만 하는, 모두가 같은 사람. 모두가 같은 알 리였다. 그렇게 사는 것도 썩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