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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n 23. 2023

물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데려간다

 그날 두 딸은 심통이 나 있었다. 모처럼 계곡에 놀러 왔는데 아빠가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집 애들은 예쁜 자갈을 주머니 가득 줍고 송사리도 잡고 그러는데 아빠는 우리가 물에 뛰어들려는 걸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아빠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었다.

 

 계곡 가까운 곳에 있는 글램핑장을 추천받았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돼서 깨끗했다. 짐을 풀고 아이들도 계곡에 풀어 간만에 휴식을 맛보려나 생각하는 찰나, 그게 눈에 띄었다.

 염병할 거.

 왜? 아내가 물었다.

 저거 말이야. 다리.

 다리?

 다리 아래로 파이프 잘라 넣은 거.

 그게 왜?

 저거 엄청 위험해.

 계곡 물이 좁아지는 곳에 놓은 콘크리트 다리엔 대부분 그것처럼 플라스틱 배관을 집어넣어 밑으로 물이 흐르게끔 만든다. 그런 다리 앞쪽은 물살이 세다. 어느 정도냐 하면 나만한 덩치가 발을 담그면 그대로 배관으로 빨려 들어갈 만큼 세다. 어른 남자도 저항하지 못하는데 애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신없이 놀다가 저 주변으로 가기만 해도 다리 밑으로 집어삼켜질 것이다. 어차피 배관이니 다시 밖으로 쏙 빠져나오지 않겠냐고? 워터파크가 아니다. 운 좋게 밖으로 나오거나 혹은 배관 아래쪽에 쌓인 돌무더기 따위와 배관 사이에 몸이 끼어 나오지 못하거나, 확률은 반반이다. 막 비가 그친 어느 날, 딱 저렇게 생긴 다리에서 배관 주위로 그물을 쳐서 낚시를 하려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그물과 함께 다리 밑으로 빨려 들어간 지 두 시간 여 만에 저 세상 사람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손목에 그물이 칭칭 감겨서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물 안에 물고기는 없었다.


  




 계곡에는 몰려든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아빠. 여보. 매형. 형부.

 아빠. 매형. 여보. 형부.

 여보. 아빠. 형부. 매형.

 형부. 매형. 아빠. 여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자의 삶과 이어진 다른 호칭이 물 밑에서 나오지 못하는 같은 한 사람을 애타게 찾았다. 아빠이자 남편이자 매형이자 형부인 남자에게선 답이 없었다. 혹 답을 했을지도 모르나 흙탕물 아래 어디서 입을 열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남자는 휴가를 맞아 가족여행을 왔다. 계곡에서 마신 술은 달았고, 남자는 수영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서 더 물살이 세지기 전에 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을 놓치면 또 언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남자의 예상대로 그건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되었다.


  나를 비롯한 구급대원들은 계곡의 하류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며 물가를 살피고, 구조대원들은 직접 슈트를 입고 물 밑으로 들어갔다. 특구단(특수구조단) 대원들도 도착했다. 사실 특구단이고 뭐고 슈퍼슈프림 콤비네이션 구조단이 온다고 해도 남자를 건져내긴 어려워 보였다. 비가 내려서 물은 흙탕이었고, 깊었고, 물살도 너무 세서 장정 몇이 물 밑으로 들어간 구조대원의 몸에 칭칭 감긴 로프를 가만히 쥐고 있기도 벅찼다. 제대로 작업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오후 2시쯤 시작된 수색은 밤늦도록 이어졌다. 산의 밤은 빨라서 7시도 되기 전에 해가 다 넘어갔다. 그렇게 오후 10시까지 수색을 했지만 남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 작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장비가 빠져서 썰렁해진 물가엔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남자의 처남과, 처제와, 아내와, 아들만 남았다.


 남자는 실종된 지 이틀 만에 발견이 되었다. 처음 구조작업이 이루어진 곳보다 한참 하류였다. 물이 불어 허리까지 잠긴 갈대와 함께 원래 거기 있던 것처럼 엉켜 있었다. 아직 가라앉기 전이라 시신은 온전한 편이었다.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부패가 되어 다시 떠올랐다면 아무리 가족이라도 남자의 시신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물을 좋아한다. 동시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해수욕은 즐기지만 바람 센 날엔 파도에 집어삼켜질까 해변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고, 정수리까지 잠기는 계곡물에 들어가 있다가도 빗방울이 물 위로 똑똑 듣는다 싶으면 발도 담그지 않는다. 그건 술을 마실 줄 알아도 음주운전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을 우습게 보았다간 면허가 아니라 인생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별 없는 삶도, 사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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