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두 딸의 여름을 책임졌던 튜브 풀장을 버리기로 했다. 날이 무더워질 즈음 부모님 사시는 시골집 뒷마당에 내놓는 물건이었다. 처음 그걸 샀을 때 아이들은 지름 2미터짜리 수영장을 어떤 대양이라도 된 양 누비고 다녔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바다는 점점 쪼그라들어 호수가 되었고, 작년 즈음해선 옹달샘만큼 좁아졌다. 사실 수영장의 크기가 변한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바다를 집어삼키며 구름처럼 몸을 불린 탓이었다.
인터넷 뒤지니까 좋은 게 있더라고. 하며 운을 뗀 아버지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아버지는 일단 뭐에 꽂히면 그걸 사고야 만다. 더군다나 이따금 시골집에 들러 할아버지에게 재롱을 떠는 두 손녀를 위한 일이다. 돈이 아까울 리 없었다.
저도 좀 보탤게요. 다 해서 한 오십 이면 되려나.
충분할 거야.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게 물을 매번 받을 수가 없어서 정화시설이 필요하데.
아 네.
정화시설까지 백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아 네.
그러고 또 며칠 뒤,
흙바닥에 놓으면 금방 망가질 것 같아서 마당에 벽돌을 깔아야겠다.
아 네.
바닥 공사 비용은 인건비 빼고 오십 정도 될 거야.
아아, 네.
맞다, 벽돌 위에 쿠션을 좀 깔아야 애들 발이 편하겠지?
그렇죠.
그늘막도 필요하고.
그렇죠.
그럼 한 이백?
아부지.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쓰던 튜브 풀장을 재탕하는 게 현명하리라 생각했지만, 위 대화를 마친 시점에 아버지는 이미 수영장 본체를 비롯한 모든 부속물들의 주문을 끝낸 뒤였다. 바닥 벽돌 공사는 사람을 쓰지 않고 아버지가 뙤약볕 아래서 직접 한 덕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예상했던 이백만 원은 온전히 들어갔다. 나 근무하는 날 물건이 왔는데, 좀 기다렸다가 퇴근하거든 같이 설치하자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듣는 척도 않았다. 몇 시간 뒤, 아버지가 가족 대화방에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철골 프레임에 두터운 방수포를 씌운 수영장이었다. 방수포 안쪽은 진짜 실내 수영장처럼 파란색 타일 무늬가 그려져 있어 더 그럴싸했다. 시골집 가려면 아직 이틀은 더 남았는데 아버지가 손주들 마음에 미리 불을 질러 놓는 바람에 달랜다고 아주 애를 먹었다.
수영장을 개시하는 날, 가는 길에 텐션이 자동차 천장을 뚫고 나갈 것 같은 아이들에게 정신없으니 좀 조용히 해 달라고 다섯 번쯤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한 오 초쯤 조용하고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달궈진 맥반석 두 개가 뒷좌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어서 물에 풀어놓아야 진정이 되지 싶었다.
실제로 보니 수영장은 더 훌륭했다. 맥없이 흔들리던 튜브풀장과는 달리 아주 튼튼했고, 가로 2미터 세로 4미터 정도로 덩치도 컸다. 물도 이전 것보다 세 배는 더 들어갔다. 다 큰 어른 네댓이 들어가 물놀이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더 큰 걸 사지 못해 아쉬워했다)다.
두 딸과 함께 물에 들어갔다. 받아 놓은 지 한참 되어서 수온도 적당했다.
아부지, 이거 물이 짠데요?
소금을 갖다가 염소 발생시키는 장치야. 그거만 오십.
그냥 소독약 풀어도 되는 거 아녜요?
애들 노는 물인데 그러면 안 되지.
그렇죠. 아들이 노는 물이기도 하죠. 하고 말하려다 말았다.
아이들은 할아버지표 수영장에서 반나절을 꺅꺅대며 놀았다. 놀다가 추워지면 밖으로 나와 할머니가 삶아온 큼지막한 옥수수 하나씩을 다 먹고 다시 물에 들어갔다. 그러다 또 추워지면 제 몸만 한 수건을 몸에 둘둘 두르고 볕이 한창인 앞마당에 나와 수박을 먹었다. 그리고 또 물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물 밖에서 캠핑용 의자에 앉아 손주들 노는 것만 봤다. 무슨 재미난 영화라도 보듯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고 눈에 담으려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마지막까지 가져갈 건 결국 그런 장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두 눈에 천국을 담고 있었다.
발이 푹신푹신하니 좋지?
그러게요.
역시 쿠션을 깔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