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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ul 01. 2023

너랑 죽는 날까지 걷고 싶다

 남자는 거미 같았다. 머리는 컸고, 복수가 차서 있는 대로 부푼 배에 종잇장 같은 팔다리가 붙어 너덜거렸다. 침상 위쪽으로는 넓은 우산 같은 것이 하나 씌워져 있었다. 통유리로 된 창에서 햇빛이 쏟아지면 남자가 그걸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였다. 눈을 깜빡이는 것. 사실 말도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온전한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흡착판이 달린 마스크를 통해 인공호흡기가 남자의 코로 끊임없이 들숨을 불어넣고 있었다. 덕분에 횡격막이 가라앉고 흉곽이 부푼 뒤에야 말은 날숨이 되어 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은 절반쯤 인공호흡기의 의지였다.

 병원 갈 채비를 하는 동안 남자는 어머니에게 계속 짜증을 냈다. 기계가 허파로 생명을 불어넣으면, 엄마, 기계, 코드 챙겨야, 말하고는 숨이 모자라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차오르면 아씨, 그거 말고, 아씨, 그래, 아 왜 말귀를 못 알아 먹, 하는 식으로 말을 이어갔다.

 

 근이영양증이란 거예요. 묻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먼저 입을 뗐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휠체어 타고 학교 다닐 수가 있었어요. 구급차가 방지턱을 넘자 마른오징어처럼 쪼그라든 남자의 다리가 퉁 튕겨져 나왔다. 아파, 아씨, 엄마, 다리. 호흡기 달고 산 지는 십 년 됐어요. 그녀가 짐짝 같은 다리를 들것 위로 주워 올리며 말했다.

 복수 차기 시작한 게 어젯밤부터인가요?

 네. 그때 신고를 할걸.

 다음부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신고하세요.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구급차가 코너를 돌자 남자의 얼굴도 들것 위로 처박힐 것처럼 돌아갔다. 머리 좀, 엄마, 머리 좀. 남자의 어머니가 중심을 잃고 도리질하는 머리 양 옆을 잡고 조심스럽게 중간으로 돌려놓았다. 집에서 떼어 온 인공호흡기가 남자의 두 다리 사이에서 쉬지 않고 쉭쉭 댔다. 지레 걱정이 되어 물었다. 배터리가 얼마나 가나요. 열여섯 시간이요. 두 사람에게 익숙한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 기이해서 마치 오래된 전설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변덕스러운 신들이 심통을 부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과장된 장면. 종종 예술가들의 먹잇감이 되어 그림으로, 노랫말로 소비되는 비극. 그곳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 깔려 있었다.


 근무를 마친 이튿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하교하는 첫째를 걸어서 데리러 가는 동안 벌써 후회가 되었다. 그냥 차를 가져올 걸 그랬나. 중간에 길을 온통 뒤덮는 물 웅덩이가 나왔다. 아침엔 비가 덜 와서 운동화를 신겨 보냈는데, 오는 길에 이걸 어떻게 넘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교문 밖으로 나온 첫째는 싱글벙글이었다. 방과 후 요리교실에서 만든 햄과 치즈를 넣은 토스트가 썩 자신작이었던 모양이다. 빵 하나를 네 조각으로 나눈 것 중에 한 조각은 벌써 먹었다. 빵이 맛나서 그랬는지 아니면 작정하고 쏟아지는 비가 경쾌했는지 여하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운동화 신은 발로 바닥에 고인 물을 첨벙첨벙 차면서 걸었다. 신발 다 젖는다. 몇 번 얘기를 해도 귓등으로 듣길래 그냥 포기했다.

 

 여기선 업어줄게. 예의 커다란 물웅덩이 앞에서 말했다.

 창피해.

 괜찮아. 보는 사람 없어.

 창피한데.

 한 팔은 아빠 안고 한 팔은 우산을 들어.

 응.

 아이가 든 우산은 제 머리만 간신히 가릴 만큼 작은 것이었다. 우리는 겨우 얼굴만 비를 피하면서 아래로는 다 젖어서 갔다. 첫째의 엉덩이를 받친 양팔이 제법 묵직했다. 한두 해만 지나면 못 업어줄 것 같았다.

 이제 내릴래.

 그래.

 물웅덩이를 지나기 무섭게 아빠한테서 떨어지려는 게 좀 섭섭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아는지 한 손으로만 우산을 들고 남은 한 손은 아빠 손을 쥐었다. 뭐라도 이야기를 나누려 했는데 빗소리 때문에 서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너랑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것 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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